3-1. 감시와 처벌 <2> 신체형의 호화로움 : 하상현

1. 진실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신체

    감시와 처벌에서 권력-지식-주체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신체형이라는 형벌부터 시작한다. 신체형의 호화로움이라는 단원 제목이 말해주듯이, 신체형은 현재의 우리가 단순하게 바라보는 잔혹하고 미개한, 계몽되지 못한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형벌은 정교하고 복합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모종의 의도를 철저하게 수행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 의도를 수행하기 위해 1) 평가할 수 있는 특정양의 고통을 만들어야 했고, 2) 고통을 만드는데 정확한 규칙을 따랐고 3) 일종의 의식을 구성해야 했다. 

*신체형의 ‘극단성’에는 권력의 경제학이라는 모든 논리가 담겨 있었다.

    푸코는 계속해서 ‘진실을 생산’한다는 표현을 쓴다. 명백히 부자연스러운 논리로 신체형을 받는 피고인 없이 조사를 하는 것, 또 그것을 자백으로 확증하기 위해 ‘고문’이라는 특이한 방식을 사용하는 것 등이 진실을 ‘생산’한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이다. 고문을 통해서 자백하게 한다는 것은 사실상 모순적인 것이다. 자백이라는 말에는 자발성이 들어가 있으나, 고문은 신체에 고통을 가하면서 그러한 자발성을 수동적으로 나오게 한다. 이는 진실과는 관계없는 힘(고통)의 논리로 인해 승리한쪽이 진실을 ‘생산’하게하는 것이다. 여기서 고문의 특이한(모순적인)방식을 통해서 ‘주체화’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 하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범인을 일방적인 잣대로 조사하고, 고문으로 자백하게 하여 진실을 생산한다. 그 후 공개적인 의식으로써 신체형을 통해, 범죄를 공적인 자리에서 고백하고(다시 한번), 범죄를 재현하거나 그 범죄와 비슷하게 상징적인 처벌을 받거나 하여 범죄와 범인 사이의 연결고리를 강하게 하는 재생산 작업을 한다. 더 나아가 사람들은 신체형 안에서 범인이 고통을 받는 모습을 통해 새로운 의미(진실)를 창출해 낸다―범인의 고통을 통해 그 죄가 덜해진다거나, 신이 범인에게 고통을 허락하였다고 보는 것과 같이. 신체형은 권력이 범인의 신체를 무대로 진실을 생산하고, 또 재생산하는 모습을 호화롭게 보여주는 것이다.

2. 정치적인 과시로써의 신체형

    신체형은 정치적인 행사로 이해되어야 한다. 법을 어겼다는 것은 군주의 힘에 대항했다는 의미에서 군주의 신체를 해치는 행위 이다. 군주(권력)은 신체형으로 잔인한 보복, 의식을 치른다. 이는 균형을 회복하려는 것보다 감히 법을 위반한 신하와 군주의 힘의 불균형을 최대한으로 회복시키는 일이다. 신체형은 물리적인 힘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공포를 이용한 정치였다. 

*신체형이 계속해서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진실을 명시하는 것이면서, 권력을 운용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신체형이 있으므로 문서와 구술과의, 비밀에 부쳐진 것과 공개된 것과의 증거 조사 절차와 자백의 역할과의 그 모든 연결이 확고히 보장된다.

    신체형이 이 두 가지 역할 즉, 진실을 명시하는 것과 군주의 힘을 보이는 것 사이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작용하게 때문에 매우 유용했던 것이다. 여기서 진실이라는 용어는 푸코의 권력-지식개념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지식은 언제나 진실, 타당성으로 취급되고 다수를 움직일 수 있는 권력이 된다. 범죄에 있어서 진실도 이와 같은 역할을 한다. 신체형은 그러한 진실을 확증함과 동시에 군주의 절대적인 힘의 공포를 민중들에게 심어줄 수 있는 것이다. 

3. 민중의 양의적인 성격

    신체형에 있어서 민중들은 양의적인 성격을 띈다. 군주의 백성으로써 파렴치한 범죄자에게 보복하는, 그래서 그 군주의 법과 권력을 신체형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스스로 체화하는 민중으로써가 그 한 모습이다. 반대편의 모습은 막강한 권력을 보여주는 처형의식에서 민중이 공포심을 느끼고, 형벌을 받는 사람과 연대의식을 느끼는 경우이다. 후자의 민중의 효과는 잔인한 형벌이 ‘인간적인’ 형벌로 바뀌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