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장자, 내편 - 응제왕 <3> 장자 총평 : 서준원

무위(無爲)의 아름다움(美)

    무(無)의 정치란 궁극적으로 무위(無爲)의 정치를 의미하고 분명히 이 과정에서 도(道)의 원리가 깃들여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양생주 편에서 백정은 백정의 도에 통달하듯이 각자는 자신이 주어진 삶의 도(道)를 파악하면 되겠지만 정치의 영역에서는 모두를 아우르는 하나의 원리를 파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난세 속에서는 항상 패왕 혹은 패권정치가 등장하지 않는가 싶다. 너무나도 많은 인위의 정치가 팽배하면 자연히 정치는 일종의 자랑거리이거나 혹은 말뿐인 정치에 불과하지 않는지 노담의 지적이 잘 나타내주는 듯 하다. 경제문감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다.

"요순시대에 이르러서는 백성의 소리를 듣고 왕에게 전한다는 의미의 간관이라는 직책이 없어도 왕의 정치는 백성의 고통에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있고난 뒤 한나라에 이르러서 유학자들이 왕의 과도한 정치 권력에 대해 백성의 소리를 듣게 하기 위해 언관 (간관)을 두었지만 백성의 소리는 더욱 왕에게 미치지 못하였다."

    한나라에 이르러서 언관이 백성의 소리를 막게 하는 시기는 한문을 공부하는 유학자들이 관리로 나아가는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백성을 위해 유학으로 무장해 왕의 패도가 아닌 덕치를 이끌어낸다는 유학자들의 패기가 사뭇 장자의 논의 앞에서 우스워지는 대목이다. (당연한 일이다. 모두를 위한 정치를 펼치려고 했으면 당장 모두에게 의무적으로 한문교육을 시켜야 했지만 그렇지도 못했고 설령 그렇게 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의 정치라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경제문감에 나온 비판의 내용은 유학자들의 취지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응제왕의 정치는 무의 정치라는 단어로 귀결이 되지만 잘만 생각해보면 그 정치는 많은 사람들이 실현해놓고 있었다. 공자가 이야기 하는 '정명'은 무의 정치, 도의 원리가 발현되는 부분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이미 자신이 할 수 있는 직분 안에서만 충실하게 일을 이룬다면 많은 부분의 문제가 해결이 된다. 하지만 욕심을 부려 과도하게 업적을 추구한다면 적이 생기고 파벌이 만들어지고 사람이 다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이 떠 맡아야 한다. 모든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제 역할(도)을 다한다면 누가 무엇을 더 제공할 필요가 있을까? 정치체제는 말 그대로 (oliver wendel Holme 판사가 이야기한 것 처럼) 현존하는 명백한 위협을 분쇄하는 일만하면 될 것이다. (정말 현존하는 명백한 위협을 막기 위해서는 구성원에게 동의를 이끌어내야 하지만 아마 자신의 도(道)에 충실한 사람은 그 충실한 도(道)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자발적으로 그 위협에 맞서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것이다. 조선시대 불교사회가 그랬다. ) 자본시장이냐 정부냐 아니면 지방자치냐 중앙집권이냐 하는 것도 전부 같은 선상에 놓여져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정명이라고 결론을 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이 무위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 된다. 아름다움이 그 끝이 없듯이 무위도 도도 반과거의 어법에서 끊임없이 추구되어야 한다. 이상 총평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