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장자, 내편 - 대종사 <3> 하상현

    장자를 6주 동안 읽고 나누며 결국 도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한마디로 대답할 순 없었지만 도는 멈춰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 듯 머리를 스쳤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수많은 관계들을 가지고 많은 곳들을 옮겨 다니고 성장하면서 변화하지만, 도를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그런 것들에 옮겨 다니면서도 무언가 변하지 않는 잔잔함을 가지는 것을 생각했다. 그것이 아무 목적지도 없이 길을 나서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던 이유였다. 

    기차를 타면 모든 사람들이 목적지를 정해놓고 그곳을 향해 움직이기 위해 기차를 탄다. 기차 안의 많은 사람들을 보면 다들 이 여정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목적지만을 생각하며, 기차를 타는 과정은 부수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기차를 타는 것 같다. 인생은 목적지를 모르고 가는 길이 대부분인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기차를 탈 때처럼 이동할 때, 반복해서 목적지를 설정하게 하고 그로 인해 인생이 마치 목적지를 알고 가는 것인 냥 착각하게 된다. 나 스스로가 목적지가 없음을 인식할 때마다 어떤 낯설기 때문에 새롭지만 불안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발걸음 한걸음이 낯설게 느껴지고, 마치 다른 사람들을 따라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대종사에서 깊게 생각해보게 된 주제는 죽음도 없고 삶도 없는 경지에 들어간다는 말이다. 우리는 내가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분명한 사실을 쉽게 잊고 사는 것 같다. 불현 듯 어느 시점에 내가 언젠간 죽을 거란 사실이 실감이 되었을 때, 내가 지금 달리고 있는 목적지가 어딘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나 집착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렇게 다시 내 실제 위치를 알게 되었을 때 내 존재에 맞는 삶을 더 살아가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 이다. 나의 죽음을 인식했기 때문에 삶이 더 진실 될 수 있다.

    시간은 상대적이며 도구적이다. 죽음을 인식했을 때 내 존재의 있는 그대로를 생각했을 때 ‘시간이 사라졌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내 나머지 삶이 시간에 흐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연속임을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죽음을 인식했을 때 역설적으로 죽음을 잊게 된다. 처음에는 죽음을 까먹고 있었다가, 죽음을 인식하게 되고, 마지막으론 죽음을 잊게 된다.

    삶을 잊었다는 말은 무엇일까?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과 나는 겉모습은 매우 같을 진 몰라도 나는 멈춰 있었고, 그들은 움직이고 있었다. 모두가 삶을 살지만 누군가는 움직이며 살고, 다른 이는 멈춰서 산다. 삶이 없는 단계라는 것도 똑같이 사는 것이지만 잊은 삶을 사는 것이라고 느껴졌다.

    도는 이렇게 멈췄을 때에서야 바로 볼 수 있게 되는 무언가 인 것 같다. 대종사에서 결국 말하는 것은 도는 말로 할 수 없는 무엇이며 느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결국 도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도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근처에 대한 것이며, 도는 앞으로 계속해서 우리가 변화해가며 깨닫는 무엇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