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장자, 내편 - 덕충부 <4> 무위의 힘 : 서준원

    '내면에 덕과 재질이 충만한 사람은 외모가 비록 보잘 것 없더라도 참된 삶을 살고 있다.' 끊임없이 사람을 볼 때 이와 같이 보려고 노력을 해보지만 참으로 어럽다. 내면에 덕과 재질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것이 참된 덕인지 아니면 수사학에 치우친 자이거나 혹은 지적 과장 속에서 살아가는 자인지) 한 번 봐서는 알 지 못한다. 한가지 떠오르는 고사가 있다. 

    세종이 세자(문종)에게 새로운 세자빈을 들이게 하려고 간택의 기준을 대신들과 함께 설정하던 중 세종은 그래도 외모를 어느 정도 고려하라는 당부를 대신들에게 하게 된다. 그 때 예판 허조가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덕을 보지 않고 외모만을 보면 가벼운 사람이 나라의 세자빈이 될 수도 있다고 하자 세종은 덕은 처음보면 어떻게 알 수 있냐 하면서 덕에만 치우치는 것보다는 외모와 덕을 함께 갖춘 사람을 뽑는 게 더욱 현실적이지 않겠냐고 반문하자 허조는 이내 수긍을 하게 되고 그러한 기준하에 뽑힌 사람이 온갖 방자한 행실로 유명해진 세자빈 봉씨이다. ( 세종이 용모를 어느 정도 고려해서 세자빈을 간택하라고 당부를 한 데에는 이전 세자빈과 세자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 퇴출시킨 경험에 기인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 결국 '덕이 충만하지 못했던'세자빈 봉씨는 세자와의 여러 다툼과 투기가 있은 뒤 궁중에서는 해서도 안될 일만 골라서 하다가 폐서인되는 신세가 된다. (남녀관계가 불평등했던 유교사회라는 점을 어느 정도 고려해야한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인정한다.)

    외적인 것을 고려하지 말라고 할 때 가장 고민이 되는 점은 사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 대한 인식보다는 이렇듯 이성이나 배우자를 판단하게 되는 기준이다. 써다보니 한가지 고사가 더 떠오른다. 

    미시마 유키오의 선배작가로 유명한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외모가 정말 볼품 없었다. (덕충부에 등장하는 왕태 정도는 아니더라도 사실 그 차이를 논하는게 무의미 할 정도다. ) 당대를 주름잡던 최승희에게 흠뻑 빠져있었다. 그는 볼품없는 외모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미인들과 관계를 맺었으며 심지어 맘에 안들면 차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재질이 갖는 크기가 이 정도이구나 라고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외적인 부분에 치우친 나로써는 재질이 갖는 크기에 대한 깨달음이 이런 식으로 다가와야 크다는 점을 솔직히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활동했던 시절은 한국이 식민지배를 당하고 있는 시절인데 그는 식민지의 무용수이자. 그리고 한자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 일본식 발음을 해서는 안되지만 이미 모두에게 익숙해져 있기에 그냥 쓴다. )

    덕충부의 이야기는 사실 개인적으로 밀접하게 연관이 있는 이야기 이다.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내가 장래에 관료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을 때 부모님은 지나친 우월의식을 경계하라는 취지에서 점잖게 충고를 주셨다. 나에게 우월의식을 가져다 주는 것은 여러가지 였지만 나의 경우는 학벌이 가장 컸고 여튼 대부분이 외적으로 보았을 때 참으로 장관인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남 앞에서 무언가를 자랑하고 싶고 앞서고 싶고 존경의 대상이 되고 싶은 욕망 혹은 야심이 과연 내가 내 주변의 사람들 (국민)을 위해 봉사할 때 내 눈을 가로막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한가지 실험을 해보았다. (지금은 실험이라는 단어 밖에 떠오르 지 않는다. 의도하고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 그래도 공부에 나름 재미를 붙였다고 생각한 나는 우월의식이나 외적인 것으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방법은 나부터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삶의 방식을 어느 정도 변화시켜보았다. 그래서 규정된 커리 큘럼을 벗어나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살고 이를 통해 혹여나 성적 이나 여타 다른 것 때문에 나를 피하게 될 수 도 있는 사람들과 친해지는 계기를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며 한동안 살았다. (이로 인한 여러 결과를 감수하는 것이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는 걸 얼마 전에 깨닫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신선한 경험을 통해 얻은 자료만큼은 그 나름대로는 의미가 있다.) 결과적으로 나는 덕충부의 인물들이 행한 무위의 경지에 도달하는 데는 실패했다. 어제 지인이 그 실패에 대해 아주 정확히 알려주었다. 

    3년 전 벨기에에서는 500일 넘게 무정권 상태였지만 아무런 혼란 없이 행정 시스템이 차분하게 돌아가 국민들 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었던 일이 있었다. 무위가 가지는 힘은 이처럼 보이지 않게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 가치를 남기고 업적을 남기고 헛된 욕망을 추구하려는 자들이 넘치고 득실대지만 사실 집착으로부터 조금만 벗어나면 사람은 최소한 헛된 고민으로 힘들어 하지 않고 참된 고민을 하며 힘들어 할 수 있다. 뛰어난 시스템을 만들어 무언가를 제공하고 모두를 행복하게 해준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했지만 동서양의 철학자들은 하나 같이 이야기 한다. 그게 불행의 시작이라고 말이다. 솔직히? 드는 생각? 있어도 정리가 안된다. 난 비슷한 이야기를 저번 주에 접했지만 애써 피했다. 하지만 대석학의 견해는 무시한다고 나를 그냥 두지 않았다. 지금은 이렇게 그냥 머릿 속에 떠오르는 고사 정도만을 논할 수 밖에 없다. 

    덕충부가 나에게는 너무나 먼 얘기지만 그래고 차분히 작은 부분부터 해나가는 정도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겠구나 하는 정도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무위의 힘을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