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장자, 내편 - 덕충부 <2> 신민주

    지난 몇 주간 아름다운 것들에 지나치게 탐닉해, 눈을 뽑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내내 맴돌았다. 그러나 눈을 뽑아 버린다 한들 아름다운 것을 탐닉하는 그 마음도 함께 없앨 수 있을까. 집착하는 마음이 사라져 버린 후에야 비로소 세상에 아름답지 아니한 것이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거늘. 문제는 이놈의 눈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것 자체를 뭐라 할 수는 없을 거다. 인생에서 없으면 심심할 소금 같은 요소이니까. 그러나 괴로움은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욕심에서,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게 두려는 무지에서, 멋대로 할 수 없는 것을 멋대로 다루고 싶어 하는 얄궃음에서 시작한다.  너무 아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정작 없어지고 나면 진한 추억으로 남는 게 괴로움이다. 나에게 장자는 괴로움을 덜어주고, 그저 담담히 안고 지나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길잡이였다. 인간 삶에 괴로움이 없을 수 있으랴마는 내게는 일상 속에서 그 파괴력이 너무 크게 느껴진다. 행복으로 가는, 아니 최소한 감정을 의식하지 않고 뭔가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정서를 만드는 길이 지나치게 험하다.  장자는 이런 계속해서 지금 빠져있는 시비와 좋고 나쁨, 쓸모 있음과 없음 등에 대해 다시 한 번 멀리서 바라보게끔 함으로써 일상적이고 습관적인 고통이 생기는 것을 덜하게 해주었다. 장자는 요 몇 주간 나에게 진통제였다. 

“…이보게, 이 이야기는 없던 것으로 하세.”- 자산의 경우.

    지은 죄 때문에 다리 한쪽이 잘린 신도가와 일국의 재상인 자산의 대화. 덕을 쌓고 도로 통하기 위해 모인 사람 둘이 하는 대화치고는 어딘가 덜 된 느낌이 난다. 신도가는 자산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상황을 드러냈다. 덕의 차원에서 공부를 하는데 그깟 인의예지, 업 등으로 높고 낮음을 따지는 것이 웬 말이냐는 것. 그래 여기서 내가 찔린 거다. 부끄러웠던 거다. 자산처럼. 장자를 읽고 있는 몇 주 동안 내내 도와 조화와 시비를 잊는 것, 인간존재의 유한함을 깨닫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맞아 맞아 하면서 공감을 했는데도 지금 내가 당장 생각하고 있는 건 눈앞의 아름다움을 좇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덕이 뛰어나면 외형은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잊어야 할 것은 안 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습니다. 이런 것을 ‘정말로 잊어버림’이라 합니다.” / “그러므로 성인은 자유롭습니다. …… 인위적인 것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덕충부에서는 계속해서 덕이 충만한 사람, 도를 깨우친 사람에 대해 묘사하고, 강조한다. 자산과 신도가의 이야기도, 절세추남 애태타의 이야기도, 성인의 이야기도. 덕충부 에서는 다른 장에서 보다 유독 외관에 대한 비유가 많다. 흔하지만 또 이처럼 실생활에서 행하기 어려운 것도 없을 거다. 그래서 이 장이 지금 나에게는 참으로 불편하다. 외형의 아름다움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를 장자가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아닌데도. 장자의 말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것 자체가 내가 외형과 함께 사람, 사물의 덕을 보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마디로 나는 장자를 읽으면서 내내 찔린다는 거다. 나는 거울을 보고, 옷을 고르며 사람의 외형을 감상한다. 심지어는 평가까지 한다. 

    분명 아름다움과 장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덕은 그리 멀지 않을 거다. 하지만 내가 집착해온 아름다움은 감각적인 아름다움, 반쪽짜리 아름다움이다. 반쪽짜리 미에 치중하다보니 전체의 나를 아우르는 덕이 흔들리는 상황인 것. 부분에 집착하면 전체가 일그러진다. 그걸 경계하고 싶은 거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거울을 본다. 나는 단지 외모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은 본능이고, 그걸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게 지나쳤기 때문에 힘들었던 게 요 몇 주고,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좀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다. 현실세계에서 실제로는 외관은 본능의 차원을 넘어 덕을 들여다보게끔 하는 중간통로가 아니라 덕을 돌아보지 않게 만드는 방해요소가 되고 있지 아니한가? 그래서 장자가 ‘그러나 사람들은 잊어야 할 것은 안 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눈이 달린 인간으로서, 그리고 그것이 다른 어떤 것 보다 더 강하게 자극되고 있는 문화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덕을 위한 노력이 앞으로의 인간관계에 어떤 변화를 가지고 올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조화의 경지가 꼭 가장 좋은 경지인지도 확신은 서지 않는다. 확실한 건 내 일상이 조금 더 견딜만 해졌다는 점이고, 그 효과를 맛본 이상 당분간은 미와 덕이 더 이상 마찰을 일으키지 않도록 계속 북적북적 할 것 같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