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장자, 내편 - 덕충부 <1> 덕이 가득함의 표시 : 김지원

    우리는 누구나 장애인이다. 사지가 멀쩡하다고 하여 '비장애인'인 것도 아니고, 눈, 코, 입, 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만 언젠가 작동이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예비 장애인'인 것도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그냥 '장애인'이다. 

    다리 한 쪽이 없는 것은, '결여'가 아니다. 그것은 다리가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았을 때만이 결여가 된다. 눈 먼 장님에게도 눈이 있다. 열하일기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비록 요술을 잘하는 자가 있더라도 소경은 눈속임하기가 어려울 테니, 눈이란 과연 믿을 만한 것일까요." 조경이 물었다. "우리나라에 사화담이라는 분이 있는데, 그분이 길에서 주저앉아 엉엉 우는 자를 만났습니다. '네 어찌 우느냐?' 묻자, 그자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제가 세 살에 소경이 되어 바야흐로 40년이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걸음 걸을 땐 발을 의지해서 보고, 물건을 잡을 땐 손을 의지해 보고, 냄새를 맡아 무슨 물건인가를 살필 땐 코를 의지해서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두 눈만 가졌지만 나는 팔과 다리, 코와 귀 모두 눈이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어디 나만 팔과 다리와 귀와 코뿐이었겠습니까. 날이 이르고 늦은 것은 낮의 피로함으로 보고, 물건의 형용과 빛깔은 밤에 꿈으로 보아서, 아무런 장애도 없고 의심과 혼란도 없었습니다. 한데, 아까 길을 걸어오다가 홀연히 두 눈이 맑아지고 동자가 저절로 열려 눈을 뜨고 보니, 천지는 드넓고 산천은 마구 뒤섞이어 만물이 눈을 가리고 온갖 의심이 마음을 막게 되었습니다. 팔과 다리와 귀와 코는 뒤죽박죽 착각을 일으켜 온통 이전의 일상을 잃어 버렸습니다. 급기야 살던 집까지 잊어버려 돌아갈 방법이 없는지라 이렇게 울고 있습니다'(...)" 이로써 보자면, 눈이란 그 밝음을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오늘 요술을 구경하는 데에도 요술쟁이가 눈속임을 한 것이 아니라, 실은 구경꾼들이 스스로 속은 것일 뿐입니다.(<환희기 후지>ㅡ열하일기)

또 열하일기에는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물을 건널 때면, 사람들은 모두 머리를 쳐들고 하늘만 바라보았다. 나는 그들이 머리를 들고 묵묵히 하늘에 기도를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아니었다. 소용돌이 치며 세차게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노라면 현기증이 일어난다. 그러니 사람들이 머리를 쳐들고 있는 건, 하늘에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물을 피하여 쳐다보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 와중에 잠깐 동안의 목숨을 위해 기도할 틈이 있겠는가. 이토록 위험한데도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요동벌판은 평평하고 넓어서 강물이 절대 성난 소리로 울지 않아" 하지만 이것은 강을 몰라 하는 말이다. 요하는 울지 않은 적이 없다. 단지 사람들이 밤에 건너지 않았을 뿐이다. 낮에는 강물을 볼 수 있으니 위험을 직접보며 벌벌 떠느라 그 눈이 근심을 불러온다. 그러니 어찌 귀에 들리겠는가. 지금 나는 한밤중에 강을 건너느라 눈으로는 위험한 것을 볼 수 없다. 그러니 위험은 오로지 들리는 것에 쏠리고, 그 바람에 귀는 두려워 떨며 근심을 이기지 못한다.(<일야구도하기>ㅡ열하일기)

    우리의 눈에는 딱 그만큼, 가진 만큼만 보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덕이 있는 이를 덕이 있는 이로 알아보지 못하고, 그가 다리가 없음을 보고, 그의 못생긴 얼굴을 보며 '아, 저사람은 다리가 없는데도', '저렇게 못생겼는데도'하는 것이다. 다리가 없고 눈이 없는 것은 연암이 이야기하듯 '결여'가 아니다. 우리중 누군가가 나서 '나는 완벽한 인간이다, 나에겐 아무런 장애가 없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다리가 없는 것은 남들보다 털이 많아 불편한 것과 같고, 눈이 없는 것은 성격이 모난 것과 다름 아니다. 이는 눈속임에 불과하다. 

    또한 장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보아야할 무엇이 따로 있다고 믿는 사람의 것.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각자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살아간다. 하나의 세상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는 이데아를 만들고, '결여'를 만들어낸다. 여기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도 결국 외물에 휘둘리지 않는 평정한 안목, 그윽한 마음, 덕이다. 쉽게 보이는 것이 덕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장작이 되어버리고, 마룻대 감이 되어버리는 목재와 다름 아닐 것이다. 

    우리는 덕을 쌓게 되면, 무언가가 될 것이라 믿는다. 공중부양을 할 수 있게 된다던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될 것이라든지, 여자들이 따를 것이라든지 등.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그것은 덕이 없는 상태에 우리의 믿음이고, 욕구의 반영일 뿐이다. 진정 덕을 얻은 사람은 그렇지 않다. 덕을 안다는 것 자체로 그 사람은 만족하며 밖으로 보이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애매하다. 덕이란 것은 쓸모가 없는 곳에 있고,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누군가 알아주는 것이 아니며, 오직 그 자신만 안다. 진정한 것이라면, 그 자신 조차도 몰라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