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장자, 내편 - 인간세 <3> 사람 사는 세상 : 김지원

    왕위를 둘러싼 권력 다툼과 당쟁으로 혼란이 극에 달한 광해군 8년.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으로 점점 난폭해져 가던 왕 광해는 허균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위협에 노출될 대역을 찾을 것을 명한다. 이에 허균은 기방에서 만담꾼으로 인기를 끌던, 왕과 외모가 똑같이 생긴 천민 하선을 찾아내어 왕위에 앉힌다. 처음엔 가장 위험한 밤에만 왕의 자리에서 잠으로 암살을 면할 요량이었지만, 왕이 어느날 갑자기 의식을 잃고,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하선은 보름동안 왕위를 지키게 된다. 함부로 입을 놀려서도, 들켜서도 안되는 위험천만한 왕노릇을 하며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될 것을 하선은 그 자리에서 백성을 대변하고, 사월이라는 시녀를 동정하고, 한효주처럼 예쁜 왕비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따뜻한 인간미를 물씬 풍겨댄다. 그리고 모든 문제는 하선의 인간미로 부터 시작된다.

이상은 영화 <광해ㅡ왕이 된 남자>의 대략적인 줄거리. 

    하선이라는 천민은 애초부터 오래살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첫째로, 그는 만담을 너무 잘했다. 넘치는 끼로 사람들을 홀렸고, 끼에다가 천민들의 정치적 입장을 보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떠들며 살았다. 둘째로, 그는 왕과 똑같이 생겼다. 왕과 똑같이 생겨서 허균에게 잡혀갔다. 셋째로, 그는 조용히 자신의 뜻을 속으로만 가지고 있어도 될 것을 왕의 자리에서 마저 참아내지 못하였다.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설쳐댔고, 결국 궁이 발칵 뒤집어지고 왕을 죽이네 살리네 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나는 영화 <광해>와 장자의 <인간세>가 오버랩 되면서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바꾸고 싶은 무언가. 그게 없더라도 세상이 바뀔 수 있을까? 세상의 많은 혁명들은 수 많은 인간들의 목숨을 가져갔다. 가까이는 우리 엄마, 아빠 세대도 목숨을 걸 수 있을 만큼 열정을 다해 청춘을 '운동'에 바쳤다. 실제로 엄마, 아빠의 친구들은 광주에서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 때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런 세상이 있을 수 있다, 고.

송나라 형씨라는 곳은 개오동나무, 잣나무, 뽕나무가 잘 자라는 곳이었습니다. 굵기가 한 움큼이 넘는 것은 원숭이 매어두는 말뚝 만드는 사람들이 베어 가고, 서너 아름 되는 것은 집 짓는 이가 마룻대 감으로 베어 가고, 일여덟 아름 되는 것은 귀족이나 부상들이 널 감으로 베어 가 주어진 수명을 다 누리지 못하고 도끼에 찍혀 죽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재목감이 됨으로 당한 재난입니다(장자/인간세).

    장자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게 목숨바쳐 이 세상을 바꾸는려 하는 것은 진정한 쓸모가 아니라는 것일까? 세상이 변화하는 것은 개개인의 목숨과는 무관하니 숨어서라도 목숨을 부지하며 혼자 즐겁게 잘 먹고 잘살면 된다, 뭐 그런 것일까? 아니다. 잘 생각해 보자. 장자의 '쓸모 없음의 쓸모'가 무엇일까. 혁명이 일어났던 그 시대의 세속적 가치로서 '쓸모'는 무엇이었을까. 이건 한 인간의 목숨이 어떻게 되었냐, 누가 죽었냐 살았냐, 몇명이 죽었냐, 그 죽음은 쓸모 있는 일이었냐 하는 그런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 더 깊게 보아야 한다. '재목'이라 함은, 장자를 처음 펼쳤을 때 부터 나오는 이제는 익숙한 단어이다. 세속적 가치의 대표. 하지만 진정한 재목은 다르다. 적당한 때를 기다리며 자신을 준비하고, 준비가 다 되었을 때, 세상의 때와 맞추어 그 빛을 발현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쓸모 없음의 쓸모이다. 그렇담 '쓸모 없음'의 쓸모에 '쓸모 없음'은 무엇인가.

    어느 시대나 그 시대의 커다란 흐름이 있다. 시대가 요구하는 것, 지배층이 요구하는 것, 시스템이 요구하는 것, 바로 세속에서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들. 그것이 장자의 눈으로는 진짜 쓸모가 없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나무 굵기가 한움큼이 되면 원숭이 메어두는 말뚝으로 만드는 것, 서너아름이 되면 마룻대 감으로 쓰여야 한다는 것. 고3은 수능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한다는 것. 대학 졸업할 때 쯤엔 좋은 직장을 준비 해야한다는 것. 행복한 삶을 위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한다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다. 이러한 세상의 요구를 물리칠 줄 알고, 진정한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것. 그러한 기다림이 진정한 재목이 되기 위한 준비가 아닐까. 

    하선은 시대의 지배정신에 역행했다. 그가 천민이었기 때문에 그가 뱉은 말들은 왕으로서 광해가 가지고 있던 이해관계들을 깡그리 무시한, 진정한 서민을 위한 정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명나라에 갖다 바치기 위해 서민들의 목을 죄고,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땅을 나눠가지지 않는 것, 결국 모든 것이 그들을 위한 것인 정치는 '쓸모 없음'이 맞았던 것이다. 아쉬운 것은 다만 하선은 때가 맞지 않았건 것. 

    때는 언제고 오기 마련이다. 지금까지의 장자 이야기가 그렇듯, 변화는 필연적인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변화 위에 놓여있으며 그것이 바로 자연이고, 순리이며,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연스런 것들을 틀어막고, 옥죄고, 부자연스럽게 만들어 버리는 것들은 언제나 넘쳐 흐르는 것을 감당할 수 없는 날이 온다. 그런 때와 나의 욕구가 맞아 떨어질 때에 우린 자연스레 변화에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린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더 큰 일을 하기 위한 역량을 키워 나아가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