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장자, 내편 - 양생주 <4> 하상현

    자기자신을 잊고 죽이는 상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찾아 온다. 노력하려고 하면 쉽게 잡히지 않지만 어느 순간에는 자연스럽게 이미 그렇게 되어 있다. 이번에 장자를 읽을 때는 책상에서가 아니라 햇살이 비치는 베란다에서 밖을 보면서 또 물을 자주 주지 못한 잎사귀가 커다란 식물을 보면서 읽게 되었다.

    그 풀은 어떨 때는 물을 먹지 못하고 어쩔 때는 물을 먹었을 것이다. 아마 많은 날 물을 먹지 못했을 것 같다. 잎의 한 부분이 노래지도록 힘들었을 텐데 여전히 어느 한 부분은 푸르고 심지어 새싹을 내려는 용감함도 보여주기도 했다. 그 줄기와 잎의 형태가 아름다웠고 지금 비치는 햇살이 감사했다. 양생주가 말하는 삶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틀이 지난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그런 삶 속에 있지 못하다. 장자가 말하는 삶이 방임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저 몸이 가는 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몸을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지만, 그렇게 두었을 때도 전혀 존재와 생명의 원리에 거리낌이 없는 상태를 찾아가는 것이다. ‘찾아간다’라고 말했지만, 이런 상태를 찾아가는데 있어서 ‘억지’가 있어서는 안 되는 것 같다. 배가 스스로의 힘으로 나아갈 수 없는데, 나아가려고 세기 뒤뚱거리다가는 뒤집혀버리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맞길 수 있도록 돛을 예민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세우고 있는 것이다.

    베란다에서 책을 읽을 때 클립보드를 함께 들고 있었다. 거기서 빛이 클립에 닿아서 그림자가 떨어졌는데 무심코 펜을 들어 그림자를 따라 그려보려 했다. 그런데 종이가 구부러져 있기에 내가 눌러 그리려고 하면 그림자가 움직여 버린다. 움직인 그림자를 그리면 펜을 때었을 때 이미 그림자는 그린 선과 어긋난다. 변화하는 그림자를 어떻게 잡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림자를 종이에 붙들어 두려고 했다. 하지만 그림자를 정말로 느끼고 싶다면 그림자를 손에 힘을 주어 펜으로 그리려고 하면 안 된다. 그림자를 느끼는 방법은, 그것을 그대로 두고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손으로 그리고 싶어하는 마음을 버릴 때 ‘포정’이 소의 각을 뜨는 것과 같은 삶을 살 수 있고, 그런 삶을 살 때에서야 손으로 그리고 싶어하는 마음을 버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