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대안이란 무엇인가 (인터뷰)

ㅎㅇㅅㄷ 발행물은 다음주나 다다음주즘 나올 것 같습니다.
그간 너무 바빠서 참석을 못했는데 이제 좀 한가해지니 매번 나가고 싶군요.
다음에 많이 싸들고 갈게요.

내용은 제가 조금 가감하거나 수정한 부분이 있는데 본의 아니게
내용이 조금 변질되었더라도 널리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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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들이 좋다 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들 때가 많았다. 그러던 가운데, 학교 주변을 돌아다니다 작은 움직임이지만 의미 있는 것들을 접하게 되었고, 결국 그런 것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게 뭔가 마음에 안들어서 작게 시작하게 된 것이 대안이라 불리는 것들이 되어 어느 순간 새로운 해답으로 제시되곤 했다. 남들이 가수 ‘비’를 좋아하는 것처럼, 그렇게 무턱대고 따라하기보다는, 모두가 좋아하는 것이라 해도 싫어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대안의 성격이 아닌가 싶다.

대범
대안이라는 것이 소수자의 입장인 경우가 많다. 언젠가는 대안도 원안이 되어 또다른 대안을 낳는 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 사실 우리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의식 자체가 대안의 실마리다. 그것들은 사람들의 인식 아래 계속 생성되고 순환하고 있다. 바꿔가는 움직임이 있으면 지켜내는 움직임 또한 존재한다. 지금 말하는 대안이란 짧게 보면 방안, 대책이겠지만 길게 보자면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어쩌면 소수의 입장이기 이전에, 원래 당연히 그랬어야 했는데 안 되고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친환경이란 단어도 대안책이기 이전에 원안이었지만, 사회가 인간 중심의 삶을 중요시하게 되면서 그게 대안이 되어온 것이라 생각한다.

민택
요새 대안 문화 복합 공간이 늘어났다. 대안이란 의미가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 왜 그럴까? 대안은 원안과 비교되는 특정 선택의 기준이며, 또한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좋거나 나쁜 뉘앙스를 지니는 개념이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 대안이 긍정이나 부정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구체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것도 아니다. 대안은 선택의 유형이면서 유기적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특정 스타일과 분위기를 자아내거나 긍정적인 모습으로만 비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대안에 대한 인식이 굳어 있고 닫혀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홍대에 있는 펑크족이 펑크 스타일의 옷을 입고 이게 펑크다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있을까?

j      
대안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자생적인 문화이다. 외국에서는 그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인정해주는 분위기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뭔가 새롭게 태어나면 우루루 쫓아가기만 한다. 요새 화두가 된 테크토닉도 그런 것에 불과하다. 대안을 표방한 상업적 활동 또한 많다. 뭔가 키워드가 올라가면 대안을 표방한 상업 활동이 많아지는 것 같다. 자본이 대안에 아우라를 씌우고 있다.

대범
나는 대안학교 출신이다. 이우 고등학교라는 곳인데 사람들은 대안학교라 하면 특정한 이미지를 갖는다. 대안학교라는 꼬리표는 일반인에게 대안학교 출신학생이라면 의레 특권 의식이나 반항심을 갖고 있을꺼라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봤을 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상 대안학교를 선택한 주체는 보통 부모이며, 학생에게는 결정권이 없었다. 대안학교를 다녔던 나는 뭐가 다른 걸까. 대안학교를 다니면 달라져야 한다라는 편견도 없잖아 있는 것 같다. 일반학교에 부족함이 없었으면 대안학교가 생길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회에서는 대안학교 출신 학생이라고 하면 어떤 편견을 갖고 보는 것 같다. 나는 그 때문에 불편한 점이 좀 많았다.

j
굳이 대안학교라는 말을 붙이는 것도 웃기다고 생각한다. 왜 꼬리표를 붙이게 된 걸까?

대범
처음에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키우는 학교다. 그런데 이제는 지향하는 바가 많이 달라졌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모색하고 가르치자는 게 한 취지였겠지만 그러다 보니 기존 사회에서 많이 벗어난 것을 표방하고 있다. 대안 문화 공간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그런 공간은 원안에 대한 고민이 있는가? 대안적인 것을 표시하고 원안의 문제에 대해 제시하고 있는가? 갤러리 카페라는 것이 처음에는 대안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그것이 어떻게 보여지는가?  


제대로 된 관리체계가 없으면, 진정성은 존재하기도 힘들고 유지되지도 않는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대안이 기존 시스템을 치고 올라왔다 하더라도 그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은 아니다. 겉모습만 갤러리 카페가 되는 것 같다. 대안은 계속 새로운 대안 문화를 낳고 순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j
대학로도 그렇고 홍대도 신촌처럼 변했다. 클럽 1세대가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홍대가 정말 좋았는데, 최근 들어 급속히 상업화되면서 예술가들이 집세를 못 이겨서 홍대를 떠나는 문제가 있다. 홍대 밖까지 세력이 확장되 대안이 자리잡을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를 잡아줄 제도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인위적인 접근은 결국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는 걸까?


어떤 아티스트들은 외부에서 도움을 주며 자리를 잡아주려 하면 오히려 거부한다. 겉으로 대안인 척하는 사람들이나 머리 회전 빠른 사람들이 오히려 대안을 미끼 삼아 오히려 상업적인 돌파구를 찾아낸다. 그런 일 때문에 많은 아티스트들이 문래동으로 이주했는데 거기서도 우여곡절을 겪고 다시 홍대앞으로 돌아온 아티스트도 있었다.
온통 뒤죽박죽…….

대범
어느새 대안이라는 것이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권력이 생겨난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대안이 변질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대안책을 내놓으면 원안이 뒤집히는 것이 아니라 차선책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갤러리 겸 카페가 새로운 유형의 개념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갤러리+카페가 되어 뭉뚱그려 지는 것, 즉 갤러리와 카페가 기름과 물처럼 섞여 이것도 저것도 아닌 모습이 되고 마는 것이다. 원대한 이상을 현실에 너무 쉽게 접목하려는 모습이다. 대안학교도 시작한지 10년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대안 교육의 효과가 없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교육은 100년 농사인데 말이 대안이지, 대안으로서 뭔가 내놓으려면 차선책이 아닌 완전 차별화된 생각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자비로 밴드들을 모아 컴필레이션 앨범을 내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의도와 생각으로 이런 활동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모두 그저 하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하고 싶어서’, ‘재밌으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것들이 대안적이라고 생각한다.

민택
무엇에 대한 대안인지 잘 모르겠다. 바쁜 일상 속에서 취미 생활이나 여가 생활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대안일까? 여태까지 대안에 대해 얘기하면서 홍대에 대한 말이 나왔는데 나는 그것이 지역이고 공간의 문제라고 본다. 사람이 모이니까 당연히 돈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만들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술이 대안일까. 대안책으로서 예술적인 형태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예술이란 행위 자체가 바로 대안이 되는 것일까? 그들은 그저 예술적인 성향을 유지했다는, 즉 개념적인 것에만 머물고 사회나 공간을 간과했다는 것으로 비판받을 수 있지 않을까? 예술이란 범주는 그저 하나의 개념, 혹은 현상 흐름일 뿐 대안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펑크 옷을 입고 이게 펑크라고 하는 것처럼 개념이 아닌 스타일이나 분위기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예술 또한 사회에서 불거져 나온 것이지만, 너무 높은 위치에서 보고 있다. 같은 문화적 맥락에서 해석하고 고민해야 한다.

anna
대범씨 말대로라면 기존의 방식을 새롭게 엎어버릴 수 있는 것이 대안이지만, 나는 작은 것도 충분히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작은 것들도 기존의 권력에 영향을 받는다. 원안 또한 대안의 영향을 받는 것이라고 본다. 

j
칸딘스키의 이론에 의하면, 시대의 정신 생활을 형성하는 삼각형의 저변에는 광범위한 대중이 있고, 꼭대기는 한낱 예술가의 영감에 지나지 않았던 것들이 있는데, 이것이 내일이 되면 지식인과 전문가들에 의해 연구되어 후세에는 대중의 취미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의 주류는 누군가의 비주류가 될 것이고, 그것이 하나의 끈처럼 이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영감이었고 생각이었던 것이다. 힘이 크고 작음의 문제는 그리 중요한 것 같지 않다.

민택 
그렇다면 봄은 대안적인 곳일까. 

anna
내가 말했던 대안의 형태로 봤을때에는 여기도 충분히 그런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안이라는 용어가 이 시대의 유행 키워드로 통용되는 시점에서 커뮤니티 봄과 연결지을 수 있을까는 고민 중이다.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이 시간 자체는 대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큰 흐름을 만들지는 못해도 작은 움직임을 일으키는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는 모두 생각이 다른데도 서로 대화를 나누며, 소통의 방식이 강요게 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서로 다른 것들을 하나로 묶어내려 하는 게 아니라, 하나로 이해하려는 활동이 참 좋은 것 같다.

민택
이거 취재하려고 이빨 까는 것 아닌가? (모두 웃음)
작은 움직임이나 밴드 얘기도 이해가 간다. 세상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직접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렇기에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고 사는 사람을 보면 대안처럼 볼 수도 있는 것 같다. 작은 것을 바꿔나가는 것, 그것이 대안을 움직이는 원동력 그 자체라고 본다.

(이모르 뒤늦게 입장.)

대범
머리 염색한 애들은 저렇구나. 그럼 왜 저렇게 염색을 했을까? 우리는 왜라는 것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이 사회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더 새로워져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정리
이제까지 대안이라는 개념 자체에 집중했다. 즉 대안이 무엇이냐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지금부터는 대안의 대안은 무엇일지에 대한 얘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태웅
대안의 궁극적인 목표가 원안이 대체되는 데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기존의 교과서가 친북 좌편향적이라면서 반북 우편향적인 교과서를 만들어 놓고 기존의 교과서에 대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분이 있었다. 결국 대안 교과서로 기존의 교과서를 대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인데, 과연 그것이 대안으로서 바람직한 일일까?

j
교과서를 선택할 수 있는 입지가 다양해지는 일은 당연히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교과서를 선택할 권리가 어차피 기성 세대에게 있는 것이긴 하지만, 하나만 정해놓고 가르치는 것보다 다양한 교과서 중에서 교육자가 선택하도록 선택의 범위를 넓혀주는 것은 아주 바람직하다고 본다. 일본의 경우도 교과서가 왜곡되었다고들 하지만, 어떤 교과서는 한일 관계의 역사적 사실을 바르게 기록하고 있는 것도 있다. 만약 일본에서 교과서의 다양화를 추진하지 않았다면 교과서가 획일화되었을 것이고, 교육의 선택 범위가 좁아지거나 질이 낮아졌을지도 모른다. 

대범
대안이라 하면 원안의 반대 개념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원안이 가질 수 없는 형식과 의미를 지닌 여러 안 중의 하나를 말한다. 따라서 교과서는 대체성이 아니라 수용될 가능성을 지녀야 한다고 보는 편이 낫겠다. 

태웅 
그렇다면 꼭 결과가 있어야 대안이 성립하는 것인가?


신생 문화를 보면, 소수라도 그것을 긍정해주고 받아들여 주는 사람이 있어야 살아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지 못하면 쉽게 사그러들고 만다. 간혹 좋은 취지에서 시작되었음에도 대중에게 호응을 받지 못하거나 경제적으로 실패하는 경우를 봤다. 대안의 대안이라는 주제를 기획하면서 대안이란 범위가 너무 커지자, 대안은 소통의 의미를 지녀야 한다고 규정한 적이 있다. 받아들이는 수용자와 만들어내는 생산자 사이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면 그것은 대안이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인사동 술자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진지한 대화들을 모두 대안이라고 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교과서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겠다.

대범 
좋은 비유인 것 같다. 실제로 이런 이야기가 여기 아닌 다른 곳에서도 있을 수 있다. 사실 그러기 위해서 이런 모임이 열리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나누고 가져가도록 해야 더 재미있고 신나지 않을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활동에 흥미를 갖고, 다른 곳에서 또 이런 자리를 만들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이다. 그렇게 또 다른 대안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려면 친구들과 술 먹고 떠드는 것도 좋지만,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이라도 이렇게 만나서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는 것,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대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상희
인터넷 상에서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산의 주체가 되어 자유롭게 글이나 사진, 그림을 게제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러한 일련의 것들이 너무 쉽게 복제되고, 유행처럼 흘러가버린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감정까지도 고정 관념처럼 퍼지면서. 이러한 문제는 비단 대안 문화의 문제만으로 볼 수는 없다. 

민택
스타일이 있고 그 스타일이 갖는 힘이 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개인의 독자성은 모두 사라져버린 채 권력화, 또는 몰개성화 되어가는 실정이다. 한 사람의 감정마저도 복제되고 고정 관념이 되고 있는 것은 큰 문제이다. 

상희
개인의 슬픔, 행복 같은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까지 모두 같아지는 것은 그것을 따라하게 만든 환경, 즉 ‘이런 것이 대안 문화다’라는 문화적 전체주의에서 비롯된 것 같다.

대범 
지난 세미나 중에 ‘천원 나답게 쓰기’라는 대안적 소비 유형에 대한 주제가 있었다. 대안적 상품이라 해서 어떤 의식을 강요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 주내용이었다. 대안적 상품이기 때문에 상품으로서의 매력이 없어도 된다거나, 친환경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고 해서 그 상품에 못생겨도 된다는 면죄부가 주어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름다운가게에서 파는 커피는 맛있다. 그것이 대안적인 커피라고 해서 맛이 없다면 차라리 그런 꼬리표는 달지 않는 편이 낫다.

이모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대안 공간이라는 말은 대체 무엇에 대한 대안이라는 것인가?


변질되고 권력화되어 있는 오늘날의 시스템 속에서 힘 없는 신진 작가들을 비영리로 알리기 위한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겠지만 의도와 다르게 그 안에 또 다른 권력화가 진행중인 것 같다.

이모르
그렇다면 대안과 대중성에 대한 연결고리는 어떠한가?

j
영국의 뱅크시는 전시장에서 벗어나 대중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거리로 나왔다. 그 취지는 순수한 것이었고 예술의 권위 의식을 꼬집고자 한 것이었다. 그것은 기존의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대안을 찾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레지던스 프로그램이나 아트 페어, 공모의 형태가 아닌 대중의 시선을 끄는 스트리트 아트나 게릴라 전시처럼 새로운 개념을 창안했다는 점에서 정말 대단하다고 본다. 
대안은 혁명 아닐까. 그 당시에는 피흘리는 압박이 있을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끌어가야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후세에 명명이 되고 새로운 개념으로 자리 잡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상희
그것을 구별할 줄 아는 현명함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한때의 유행인지 원안의 대체 가능성을 지닌 것인지를 감지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바람직한 대안이 나올 것이다. 

대범 
과정 자체에서의 대안이냐, 아니면 과정의 결과를 대안으로 볼 것이냐. 결국 시공간의 문제라고 본다.


어떤 것이 좋은 대안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때는 그 다음 단계에서 원안을 대체하는가에 큰 비중이 주어진다. 하지만 주체가 그것을 거부해도 대안은 되는 것 같다. 그것이 꼭 다음 패러다임으로 흘러가지 않아도 말이다.
완전히 비영리로 운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은 자생력이 떨어진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 대안으로 나왔으면 대안인 것이다. 시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이 지금 현재 대안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다. 

춘식입장

대범
어떤 안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대안의 정의이다. 말이라는 게 참 어렵다. 제안, 방안, 대안, 대책 모두 다 비슷한 뜻 같지만 부호에 따라 그 뜻의 범주가 결정되고 있다. 제일 상위에 있는 것이 대안이다. 순간적인 변화, 즉 시점의 변화에 따라 단어의 미묘한 뉘앙스가 달라지는 것 같다.

j
그 동안 살면서 각자가 느꼈던 대안에 대해서 말해보고, 그것을 토대로 정리해보자.

이모르
대안이 굳이 행동적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쥐 
행동하는 대안이 필요하다. 생각뿐인 것보다는 실제로 움직이는 대안이 필요하다.

대범
주변 사람들 모두 봄으로 끌고 오라.(웃음)

춘식
돼지나 소의 배출물들이 환경에 아주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를 본 적이 있다. 문제는 그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것들이 너무 말도 안되는 것들이었다는 사실이다. ‘곤충을 먹자’, ‘도마뱀을 먹자’같은 비현실적인 안들이었다. 솔직히 곤충을 어떻게 먹나? 맛이라도 비슷하든가. 이런 식의 대안은 문제가 많은 것 같다.
개념조차도 대안의 유형으로 볼 수 있지만, 방안이나 대책이 나오더라도 그것의 과정과 결과가 없으면 있으나 마나 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그런 면에서 캠페인 같은 활동은 좋다.

anna
요새 아마추어 잡지가 많아졌는데 취재나 인터뷰는 거의 셀레브리티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잘 알려진 작가나 그들의 활동을 주로 싣곤 하는데 우리가 만들고 있는 잡지는 그런 것에서 벗어나 매체의 발신자나 수신자 사이의 경계를 없애려 한다. 발신자가 수신자이면서 수신자가 발신자가 되는, 체제를 뒤집는 역설적인 매체가 되고 싶다. 대안 복합 문화 공간이 기존의 공간들에 영향을 준 것처럼 여러 사람들에게 우리의 활동이 감흥이 되고 전이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우리가 작가는 아니지만 예술적 흥미가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흐름을 제공하고 동참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범
또 다른 봄이 태어났으면 한다.

anna
있지 않을까? 있겠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또 다른 사람을 통해서 오게 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