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 놀이터의 상상력 (쌀)

    지난 세미나에서 집중적으로 논의한 놀이터의 가능성과 그 의미를 바탕으로 재미있는 구상을 하나 제안하고자 한다. 이름하여 지하철 긴급 디스코텍. 21세기를 달리는 이 시점에서 ‘디스코텍’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다소 촌스러운 감이 적지 않으나, ‘클럽’이 연상시키는 세련됨이나 ‘나이트’의 퇴폐성 내지 거부감보다는 ‘디스코텍’이 주는 친근하고 복고적인 느낌이 더 강한 어필의 효과를 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지하철 긴급 디스코텍’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지하철 전동차를 이용한 이동식 ‘클럽’이다. 왜 하필 ‘지하철’이냐는 물음에는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본다. 이미 지지난번의 지하철 세미나를 통해 지하철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복잡미묘한 특수성은 충분히 논의된 바 있다.
    지하철, 특히 전동차 안은 공공의 공간인 동시에 각 개인들은 그 공간의 특수한 상황에 의해 어떠한 관계를 맺게 된다. 전동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 파편화된 개인이면서, 맞은 편 또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의식하는 相依的인 집단을 구성한다. 
    ‘지하철 긴급 디스코텍’은 지하철 내에서 발생하는 개인의 이중적 특성에 주목했다. 사실 그것은 철저히 사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트’ 또는 ‘클럽’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두 공간을 ‘놀이터(어떤 유희목적을 위한 혹은 탈상의 공간)’라고 보았을 때, 그 공간은 일상적이고 사회적인 외부 공간과 구분 또는 단절되며 공간 내에서만 적용되는 일단의 규칙이나 기준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난 세미나에서 어린 시절의 놀이터에서 술래에게 잡히면 죽기라도 할 것처럼 뛰어다닌 기억을 이야기한 바 있다. ①놀이터가 아닌 일상적인 공간에 있거나, 혹은 ②스스로를 더 이상 어린 아이로 규정할 수 없거나 타인으로부터 아이 대접을 받을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을 때 술래잡기를 한다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다. 그것은 ①특정한 공간 혹은 ②특정한 시점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며, 놀이터는 둘 가운데 공간의 특수성이 강조되는 개념이다.

    이제 ‘지하철 긴급 디스코텍’으로 돌아가 보자. 우선, 뒤에 이어질 글에서는 그 이름이 너무 길기 때문에 줄여서 ‘러닝클럽(Running-Club)’으로 부르려고 한다. 또한 클럽(Club)의 의미는 본래 영어 단어가 지닌 의미가 아닌 한국에서 통용되는 ‘클럽’의 의미임을 미리 밝혀둔다. 혹은 ‘지하철 긴급 디스코텍’을 포기하고 ‘러닝클럽’으로 갈 수도 있다.
    러닝클럽의 이용 타깃은 역시 젊은 층이다. 또한 러닝클럽 이용 후 탑승했던 곳에서 다시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여러 모로 편리하므로 2호선 전동차에 배치되는 것이 적절하리라고 본다. 10시에 인천에서 탑승해서 12시에 의정부에서 내리게 된다면 여러 모로 난감할 것이다. 또한, 일상적인 지하철 운행에 큰 차질을 준다면 놀이터로서의 ‘독립성’―외부세계에 영향(여기서는 피해)을 주지도, 큰 영향을 받지도 않기 위한 전제 조건들―이 훼손될 수 있으므로 전체 전동차의 일부만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만약 10량에 이르는 모든 전동차가 러닝클럽화한다면 앞뒤로 운행되는 다른 일반 전동차 사이에서 매우 애처로운 신세가 될 것이다. 많아도 4량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보며, 2량 정도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러닝클럽의 묘미는 마치 찻잔 속의 태풍과도 같이, 공공성이 극대화된 공간에서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유희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클럽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음악과 춤, 혹은 즉흥적인 만남을 통해 일상의 긴장을 해소한다. 여기서 모든 음악과 춤이 ‘개인적이고 은밀한 유희’는 아닐진대, 아시다시피 클럽에서 즐기는 춤이란 강강수월래나 ‘기차놀이’와 같은 群舞도 아니고, 클럽이라는 공간 역시 한 사람이 춤을 선보이면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따라하거나 감상하는 무대도 아니기 때문에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행동이라는 것은 춤이든 만남이든 매우 원자화되고 개인적인 활동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개인들이 공유하는 부분은 ‘놀이터’가 정하고 있는 몇 가지 룰 정도일 것이다.
    러닝클럽의 내부는 어떠한가? 전동차에 설치되어 있는 의자들을 떼어내면 꽤 넓은 공간이 마련된다. 대략 70평 정도 될 것이다. 간이 스탠드 테이블과 벤딩 머신, 음향 기기를 갖추었다고 했을 때 20~30명 내외의 인원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즉흥적인 만남을 위해서든, 혼자 춤을 추며 내면으로 침잠하기 위해서든 전동차가 앞뒤로 긴 것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공간 형태가 새로운 효과를 창출할 수도 있다.
    우퍼에서 터져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달리는 열차의 흔들림을 온몸으로 느끼며 춤을 춘다면 어떤 기분일까? 열차는 모든 역에서 정차하지만, 러닝클럽의 문은 10~20분 간격으로 정해진 역에서만 열린다. 물론 그동안 일반 전동차는 끊임없이 열리고 닫히면서, 평소와 다름없이 운행될 것이다. 그렇다면 러닝클럽은 어떻게 ‘출입’할 수 있는가?
    일차적으로 출입을 위해서는 비용을 지불하는 장치가 부착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 일부 역에 설치돼 있는 ‘교통카드용 1000원 기부 장치’와 비슷한 형태일 것이다. 러닝클럽은, 그것의 운영으로 인해 발생하는 승객 수송률 감소와 비용 충당 문제를 고려했을 때 무료로 운영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이 지하철을 이용하는 데에 큰 불편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된다면(물론 확인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건물 임대료와 인건비 등이 포함된 일반 클럽 이용료보다는 저렴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닝클럽은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공공 시설’이기 때문이다.
    출입 제어 장치는 지하철에 부착되어 있으면 전동차 출입문을 전후로 공간이 잡아먹히기 때문에 스크린 도어 앞에 부착하는 편이 공간활용 면에서 적절하리라고 본다. 스크린 도어 앞에는 소형 개찰구가 설치되어 있다. 카드를 갖다 대면 스크린 도어가 열리고, 개찰구를 통과할 수 있다. 이외에도 러닝클럽의 세세한 내용들을 생각해 본다면 그 아이디어가 무수하리라.

    중요한 것은 러닝클럽의 세부적인 모습들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러닝클럽의 상상력―그 기저에 깔린 ‘놀이터의 상상력’ 그 자체이다. 일상의 따루함과 그것이 유발하는 타성, 그리고 삶에 안주0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수동적 자세로부터 벗어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脫常(일상을 벗어남)은 그 중의 하나이다. 러닝클럽과 같이 평범함을 개조하는 상상력은 또한 그 탈상의 하나가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세미나가 구체적인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현실화 되느냐 마느냐 문제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님은 세미나에 참가하는 사람이라면 잘 이해하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우리의 세미나는 일상의 경계에서 벗어나 우리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고, 그것을 공유함으로써 또한 새로운 것을 보는 작업이다. 물론 서로가 본 내용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 보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상호작용이 일어나며, 내 것이 되지 않더라도 서로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지하철은 따로 또 같이, 서로가 서로를 바라본다. 그 공간 속에서 시선이 마주치고 서로의 시선 속에서 새로운 관점을 발견한다. 러닝클럽은 자신만의 시선이 극대화된 공간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자신을 바라보던 간에, 그곳을 빠져나온 후 우리는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전동차 문이 열렸을 때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전동차 안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유영하는 무리의 경계에서 ‘놀이터의 상상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미 당신은 그것을 경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