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 지하철, 미니홈피, 훔쳐보는 관계들 (윤율리)

    지하철 안은 지루하다. 차창 밖의 검은 터널도, 단조로운 안내 방송도, 언제나 변화 없는 무미건조함의 연속일 뿐이다. 그러나 동시에 지하철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공간이기도 하다. 가령 출근길의 지하철은 비록 비좁고 숨막히는 작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지만,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치열한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도저히 하나로 묶일 수 없는 다양한 얼굴들이 아무런 공통분모 없이 뒤섞인다는 것, 이 지극히 희극적인 사건에서 지하철이 뿜어내는 긍정적인 함의들은 시작된다.
    나와 다른 것은 자연스레 호기심을 자아내기 마련이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가까이 있는 누군가를 훔쳐보는 행위는 지루한 지하철 안에서 누릴 수 있는 몇 안되는 즐거움 중의 하나다. 사실 ‘훔쳐보는’ 것은 단순히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이기에, 많은 경우 이것은 매우 예의 없고 금기시되어야 하는 행동으로 간주된다. 반면 그렇기에 훔쳐보는 것은 강렬한 자극과 긴장감을 동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상 언어로서 관음증이 가지는 뉘앙스는 썩 좋지 않지만 대부분의 인간이 훔쳐보기를 욕망한다는 사실 만큼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지하철 속의 훔쳐보기는 싸이월드의 매커니즘을 연상시킨다. 싸이월드가 서비스한 미니홈피는 ‘싸이폐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네이버나 티스토리, 혹은 여타 개인 홈페이지에 밀려 요즘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니홈피 사용자의 수적 우세는 절대적이다. 싸이월드는 기본적으로 훔쳐보기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거대한 네트워크 안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이름이 떠있고, 간단한 몇 가지의 절차를 통해 그들의 개인적인 일상이 언제든 내 화면에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미니홈피에 접속해 프로필이나 사진, 일기 등을 훔쳐보는 일련의 행위들은 필연적으로 개인정보유출의 위험성을 동반한다. 이러한 논란으로 인해 싸이월드는 불특정 다수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는 비공개 게시판과 방명록을 업데이트 했고, 정보공개의 수위를 조절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안전 장치를 마련했지만, 본질적으로 개방된 형태의 미니홈피가 의도적인 엿보기를 제한할 수 있는 힘은 지극히 미미한 것 같다. 심지어 많은 경우 드문드문 남겨진 ‘1촌 공개’와 ‘비밀이야’는 오히려 싸이월드의 관음적 상상력을 더욱 증폭시키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엿보이는 쪽에서도 이를 충분히 의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미니홈피의 ‘투데이’ 지수는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엿보았는지에 대한 척도다. 대부분의 사용자는 투데이를 높이기 위해 흥미로운 글이나 사진을 스크랩 하고, 더 좋게 엿보여지기 위해 과감히 지갑을 열어 스킨을 구매한다. 미니홈피의 배경음악을 선택하는 이면에는 한층 더 복잡한 정치적 계산이 요구된다. 단순히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 위해서라면 오프라인에서 앨범을 구입하거나 MP3를 다운로드 받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배경음악'은 약간의 과장을 더해 자신의 예술적 취향을 드러내거나 과시하는 일종의 제스처이기에, 사용자는 엿보는 이들이 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된다.

    지하철과 미니홈피는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지하철의 훔쳐보기에는 상대적으로 스스로 훔쳐보일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의도성이 적고, 개체들이 특정한 관리자에 의해 설계된 네트워크를 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어떠한 종류의 훔쳐보기이든, 사실 모든 훔쳐보기들은 '쿨함'이 최고의 미덕으로 칭송받는 오늘날 우리에게 허락된 거의 유일한 소통의 방식이어 왔다. '훔쳐본다'는 어감이 가지는 부정적 뉘앙스─약간은 불쾌하고 파렴치한─에 대해서는 이미 앞서 짧게 언급한 바 있지만, 섣부른 가치 판단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훔쳐보기는 훔쳐보기 위한 대상으로서의 타자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매우 상호 존중적이고 배려심 깊은 태도다. 전통사회의 덕목으로 여겨졌던 사람 사이의 끈끈함이 종종 번거롭고 집요한 스트레스였음을 감안할 때, 이것은 전혀 다른 방식의 소통으로서 분명 하나의 대안적인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인간들이 모여 앉는 지하철의 긴 의자는 마치 어린 시절 우리가 열광했던 마츠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우리는 더 이상 누군가의 승차권을 두고 다툴 필요가 없기에 다만 서로를 몰래 바라보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같은 이야기이다. 서로에게 뒤엉켜 서로를 탐하는 시선들은, 결국 “난 네가 원했던 욕망들의 환영”이라고 말하는 메텔에 대한 작은 오마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