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지하철. 첫 번째. (정리 : 윤율리)

참석 : 준혁, 민택, 철기, 정택, 춘식, 윤선, 동희, 자민.


1. 지하철, 도구성을 극복하라.

  지하철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지하철은 명백히 목적지까지 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 혹은 도구일 뿐이고, 그래서 심지어는 지하철 속의 다른 타인들마저 다만 수단에 붙어있을 뿐인 장식물쯤으로 전락해 버린다. 어떤 의미에서 지하철은 지상 사회의 작은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다양한 인간과 다양한 사건은 다양한 가능성의 필요조건이지만, 모든 것이 도구적으로만 관계맺음 한다면 결국 아무 소용 없는 일이 될 것이다.

  a) 사실 '도구성'은 가치판단이 개입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때로 이것은 어떤 것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자의식을 가진 인간에게는 분명 스스로의 육체마저 충실한 도구로서 기능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구성을 일방적으로 부정하기 보다는 긍정적인 도구성의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b) 가장 큰 문제는 애초에 명시된 지하철의 목적 자체가 철저히 수단적이라는데 있다. <시민을 목적지까지 최대한 안전하고 빠르게 운송하는 수단>으로서의 목적에는, 그 과정에서 어떻게 기능하고 소통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지 않다. 사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하다. <시민을 목적지까지 최대한 안전하고 빠르게 운송할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서의 지하철은 어떤가?
  c) 지하철을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다양한 안이 나왔다. 둥그런 좌석 배치라든가, 조명의 교체, 지하철 안의 북카페, 스포츠 중계, 세미나 혹은 포럼 등이 가능하다. '개인적 도구'와 '사회적 도구'를 구분하여 도구성에 요구되는 공적 윤리(책임) 의식을 지적한 의견도 있었다.


2. 지하철, 수단으로서 가장 의미있는 무엇.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모든 사물은 저마다의 목적을 가진다. 그런데 사물의 목적은 인간에게 어디까지나 하나의 방편으로서 전제된 것이다. 인간조차 도구화 되고 사물화 되는 천민 자본주의에는 분명 문제가 있지만, 오히려 사물은 사물 본연의 쓰임에 충실할 때 가장 가치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지하철 때문에 지하철 안의 사람들마저 수단적으로 관계 맺게 된다는 주장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다. 또한 지하철을 이용하며 아무런 심리적 부담도 느끼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단순한 성향이나 취향의 문제일 가능성도 배제될 수 없다.

  a) 실제로 외국의 지하철에 비해 우리나라의 지하철은 상대적으로 열려있는 형태에 속한다. 마주보게 배치된 좌석이나 그 사이의 넓직한 공간은 매우 효율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쾌적함을 제공하고 있다.
  b) 지하철 안에서의 어설픈 소통 가능성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면, 아예 한 발 더 나아가 광역 버스처럼 폐쇄적인 좌석 배치를 해보는건 어떨까. 차라리 이것이 이동 수단으로서 소기의 목적에 더욱 부합한다.


3. 지하철, 그 안의 또다른 사람과 사람.

  지하철의 인간 군상들이 모두 같은 이유로 지하철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많은 수의 사람이 오가는 곳이 늘 그러하듯, 지하철은 때로 부랑자의 동냥터가 되기도 하고 갑작스런 간이상점이 되기도 한다. 사회의 차가운 냉대에 밀려 마지막 배수진을 친 이들에게 지하철은 치열한 전쟁터나 다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정을 유발하기 위한 가짜 퍼포먼스(?)나 맹목적인 전도 행위 등은 공공장소에서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행해지는 심각한 폭력일 수 있다.

  a) 이것은 1의 c번에서 제기된 '공적인 도구'의 개념과 맥락을 같이 한다. 분명 지하철이나 공원은 펜이나 지우개와는 다르다. 전체의 편의를 위해 쓰여야 하는 도구들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매우 보편적인 수준의 룰(상식)이 지켜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명백히 법에 저촉되는 불쾌한 행위들은 분명한 기준을 통해 제지되어야 한다.
  b) 그러나 인권은 다른 어떤 것의 하위 개념일 수 없다.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한 약자들을 도의적으로 배려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오로지 법만을 판단의 근거로 삼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다. 불법적인 판매 행위의 경우 아예 이를 합법화 하는 것이 정답에 가까울 수 있다. 1의 c와 연계한다면 지하철 안의 상점이나 카페테리아가 가능하다. 물론 다시 합법화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는 상인과 그렇지 못한 상인이 나타나겠지만, 최대한 공정하게 수익이 분배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한다면 결코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는 아니다.
  c) 잊고 넘어가기 쉽지만 기관사 역시 지하철 안의 많은 '사람'들 중 하나다. 지하철 기관사의 노동 환경은 정신적 스트레스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플랫폼에서의 잦은 자살 사건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종일 어두컴컴한 터널을 오가야 하는 직업 특성상 우울증에 걸릴 확률도 높다. 터널의 벽면에 조명을 달거나 미술품을 설치해 보는건 어떨까?


4. 지하철, 죽음과 맞닿다.

  지하철이 함축하는 다양한 의미들에 대해 분석했다. 그러나 오히려 개인적 차원의 범주에서 지하철은 심리적으로 훨씬 많은 작용들을 일으킨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자살 충동이다. 어쩌면 칠흙같은 긴 미로들로 이루어진 지하철은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죽음을 연상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a) 자살의 방법은 죽기 전 인간의 무의식을 그대로 표출한다. 예컨대 지하철에서의 죽음은 <사회라는 좁은 닭장 속에서 알을 낳을 수 없다고 느낀 무기력한 인간>이, 스스로를 어떤 거대한 것으로 짓뭉개 버린 죽음이다. 또한 그처럼 짓이겨진다면 단번에 죽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작용한다.
  b)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뛰어내리는 행위 역시 인간이 강하게 욕망하는 즐거움 중 하나다. 일상에서도 낙하 충동으로 인한 아찔한 쾌감들은 죽음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해준다. 이것은 매우 치명적인 유혹이다. 롤러코스터나 자이로드랍은 낙하 욕망을 상당히 안전하게 구현한 놀이 기구이다.
  c) 지하철에서 죽는 것은 매우 사회적인 죽음으로, 크게 이슈화 되어 자신의 불만족을 피력할 수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5. 지하철, 훔쳐보고 훔쳐보이기.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법한 지하철 내에서의 관음증 역시 그렇다. 비단 지하철 뿐만은 아니다. 첫날밤 신방 창호지에 어김없이 뚫리곤 했던 구멍처럼, 몰래 바라보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에게 시대를 막론하고 가히 보편적이었다. 지하철의 공간적 특수성은 이러한 관음증을 아주 일반적인 일상의 저변으로 확대시킨다. 우선 애매하게 마주보며 앉게 되는 좌석 배치부터가 그런 요소이다. 특별히 읽을 잡지라든가 책을 준비하지 않은 이상 탑승객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서로를 향하게 된다.

  a) 자신의 눈길에 무방비로 노출된 낯선 인간을 바라보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묘한 흥분을 불러 일으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상대방을 모른다는 사실과 나의 시선을 그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대전제이다. 이것은 적당한 호기심에 <무언가 몰래 하고 있다>는 약간의 악의가 가미된 아찔한 쾌감이다.
  b) 이는 사건의 현재진행성과 관련 있다. 현재진행성은 다시 불확실성으로 연결된다. 눈 앞에서 펼쳐지는 'LIVE'는 뛰어난 몰입력과 상상의 가능성,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흥분을 함께 선사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목적지를 위해 타고내리는 지하철의 특성상 현재진행성은 더욱 다이나믹해 진다. 사실 1인칭의 시점으로 스펙타클하게 펼쳐지는 이 광경과 광경 속의 인물들은, 두 번 다시 조우하지 못할 가능성이 큰 유니크한 것이다.
  c) 재미있는 사실은 누군가를 직접 훔쳐보는 것보다 오히려 문자나 신문을 훔쳐보는 행위가 더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점이다. 이런 종류의 관음증은 훔쳐보기인 동시에 훔쳐보이기 이다. 간접적인 훔쳐보기는 대부분 서로의 의식 하에 이루어지기에, 시선과 시선은 팽팽히 맞서며 묘한 신경전을 벌인다.

  d) 훔쳐보기와 훔쳐보이기는 흥미로운 질문거리를 제공한다. "내가 의식하는 저 사람은 과연 어디까지 나를 의식할 것인가?" 아마 관계맺음의 사이에서 영원히 풀리지 않을 법한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