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옷. 두 번째. (정리 : 쌀)

이번 세미나는 지난 시간에 나누었던 이야기를 토대로 각자가 준비해온 작품 또는 그것에 대한 기획이나 아이디어를 나누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 민택
- 자화상 (그림 파일 필요)

재료 : 진한 연필, 파스텔, 콩테
특징 : 흰색과 푸른 색의 대비. 강한 선. 턱과 가슴께 살짜쿵 걸친 부분 나체.
(내가 이해한) 설명 : 지난 주 세미나 때, 옷을 이야기하면서 나왔던 '욕망'의 문제가 많이 녹아들어 있다. 내가 지금 원하는 바, 추구하는 바가 순전히 내 본능으로부터 나온 진짜 '내 욕망'인가 아니면 외부로부터 나에게 들어 온 '학습된 욕망'이냐 하는 문제 말이다.

이러한 고민은 옷을 입지 않은 '나체'라는 형태를 선택함으로써, 학습된 욕망인 '패션'ㅡ'옷'이라는 기호를 선택하는 행동으로 구체화되는ㅡ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했다.

강렬한 선으로 표현한 뻣뻣한 목은 꿀리지 않겠다는 강인함 내지 자존심의 표현인 한편, 작품의 재료로 사용된 연필이나 콩테, 파스텔 같은 것들은 쉽게 '흩어지고 떨어질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요컨대 '변화가능한 뻣뻣함'이라고 할까.

이에 대한 몇 가지 코멘트

Juli : 옷은 '당연히 입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옷을 안 입는다는 것은 옷을 입어야 한다는 생각, 혹은 그러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외부적 억압을 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石子 : 남미에 있는 동안 웃통을 벗고 다닌 적이 많았다. 날씨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그것을 또 하나의 '옷'으로 여기고 일부러 그렇게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쉽사리 그러지 못한다. 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보는 눈이 있고, 벗고 한국에서는 아직 다니는 것이 하나의 '옷'으로서 수용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옷을 '벗는 것'이 자유롭지 못하다면 결국엔 입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이럴 때는 정말 옷을 입는 선택의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물론이고 심하게는 입혀진다는 느낌이 든다.

민택 : 대상에 대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앎'과 '선(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측면을 작품에 반영하려고 노력했는데... 방금 자다가 일어나서 비몽사몽이다. 표현이 잘 안 된다.

한비 : 아름다움(美)과 善이 서로 적절하게 뒤섞이거나 연관되어 있는가? 사실 이것은 대상을 관찰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들판에서 땀흘리며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 '계급의 모순', '노동과 착취'등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펼쳐진 들판의 모습과 그러한 풍광 속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쌀 : 취미론이 생각난다. 인식하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아름답기도 하고 선하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그 대상에는 善이든 美든 그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 내재하고 있다는 미학의 논의 가운데 하나이다. 그냥 생각이 났다.

Juli : 善과 美를 동일한 가치 개념으로 놓고 보려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 '앎'이나 '善', '美'와 같은 것들이 너무 큰 개념이라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민택 : '美'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었기 때문에 '美'와 '앎'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이 드러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고민했다.

★ 대범
- 무제(리플 남기면 수정하겠음)

아직 완성된 작품은 아니지만 계획은 다 짜 놓았다.
벽에 검정/연두색/분홍색의 페인트를 칠하되, 중간에 걸어 놓을 청바지를 중심으로 태양빛이 퍼져나가듯 화려하게 칠한다. 그 청바지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하자면, 명품을 추구했던 중학생 때 이탈리아에서 직접 사 온 베르사찌 진이다. 지금 내가 추구하는 옷 스타일, 미와는 거리가 있다.

그때 그것을 산 이유는 이렇다. 그것을 사면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 같은 쾌감이랄까 그런것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이제는 몸에 맞지도 않아서 입지 못한다. 이미 헌 옷, 구제가 되어버린 그 청바지는 나에게 명품으로서의 가치조차 상실했고 허무함을 느꼈다.

검정/연두/분홍이라는 색깔에 담긴 의도는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 삶과 관련이 있다. 나는 힙합 스타일에서 정장에 이르기까지 나도 헷갈릴 정도로 다양하게 입는다. 검정/연두(초록으로 할 것이다. 연두색 페인트는 구하기가 힘들기 때문)/분홍은 각각이 드러내는 차이만큼이나 다양한 나의 복합적인 패션 스타일의 넓은 스펙트럼을 나타낸다.

옷을 이야기 할 때 검정색하면 흔히 정장을 떠올린다. 정장에는 느와르의 이미지가 담겨 있고, 이것을 입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버젓이 나쁜 일을 저지를 수 있을것만 같고 실제로 그랬다.
초록은 히피와 관련이 있다. 히피들의 자연스러움, 자유(방황)을 담으려고 한다.
분홍은 튄다. 눈에 잘 들어오고 어쩌면 검정/초록과 매치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의 복합적이고 폭넓은 스타일의 조합이다.
페인트 칠을 하고 옷을 걸 때에는 브랜드네임이 보이도록 옷의 뒷면이 보이게 걸 것이다.

★ Juli 
- 입는 쇼

지난번 '먹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와 같이 '입는다'라는 동사와 '옷'이라는 명사가 분절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기록자 주 : '옷'은 '입는다'라는 환유적인 언어구조를 형성한다. 그러나 대범이가 전시하고자 하는 베르사찌 청바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입지 못하는 옷'으로서 그러한 구조가 파괴되는 일이 흔히 벌어진다]
결국 이것은 욕망의 분절을 의미한다.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옷은 옷대로, 입는 일은 또 입는 행위 따로 분리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패션쇼는 수많은 명사의 나열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것과는 다른 접근을 하기 위해 입는 쇼를 기획했다. 쇼의 처음에는 사람이 없다. 무대에는 옷만이 있으며 아무것도 입지 않은(벌거벗은?) 사람들이 무대에 나와 그것을 '입는다'. '옷'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 위에 어떻게 옷이 '입혀지는지' 본다.
무대에 올릴 옷들은 다양한 욕망을 표현할 수 있는 상반되는 스타일의 옷들이다.

코멘트

택 : 입는 것이 아니라 '입혀지는 것'을 볼 수 있겠다.
쌀 : 입는 행위를 통해 낯섦 내지는 추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옷에 몸을 집어넣는 행위는 그 자체로 우스우니까.
예슬 : 다른 사람이 옷을 고르고 모델이 그것을 입는 것도 좋겠다.
대범 : 옷을 입는 사람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히는 것은 어떨까? 무대에 옷을 두지 말고 런어웨이 입구에 놓고 입으면서 워킹ㅁ하는 것도 좋겠다. 

이상. 세미나를 정리하면서 나누었던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위의 내용 중간중간에 적절히 삽입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