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대선. 첫 번째. (정리 : 윤율리)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울음을 터뜨리는 갓난아기와 젖을 물려 어르는 어머니의 신경전(?)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정치 경험 중 하나일 것이다. 최근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조차 극히 정치적인 제스처의 하나로 간주될 수 있다면, 결국 정치란 인간 본연의 숙명과도 같은 어떤 대상임에 틀림없다. 


a. 도대체 누굴 찍지?

  대선이 벌써 코앞으로 다가왔다. 여기저기서 정신없는 경황들이 포착된다. 대한민국 사회가 요동치고 있지만 정작 누구에게 내 소중한 한 표를 던져야 할지는 모르겠다. 이명박의 지지율이 40%인데 '창'의 재림으로 어느 선을 지키는데 급급할 거라는둥, 경제성장은 7%다 6%다, 일자리는 500만개니 뭐니 하는 실체없는 숫자 놀음들만이 난무한다. 돈으로 뭐든 할 수 있는 세상인데 어디 믿을만한게 하나라도 있어야지.
  솔직히 우리나라 정치 풍토는 꽤나 저질이게 사실이다. 경선이 끝나니 공천권을 가지고 치고받고 벌써 엉덩이부터 들이밀지를 않나, 캐캐묵은 지역 구도에서 다시 재미좀 보잡시고 합치니 마니 유치한 수작들이다. 盧씨로 인해 3金 시대가 끝나고 나니 왠지 그 후계자들의 아우라가 원로 정치인들에 비해 작아보이기도 하고, 아무튼 이번 대선의 고민에 이런저런 문제들이 같이 맞물려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정권이 10년간 지속되었으니 한번쯤 바뀔 때가 되었다는 얘기는 기실 충분히 설득력 있다. 어느 쪽으로도 정치 세력들에 새로운 자극이 될테니까. 문제는 야권 인사들이 좀 한심한 인간들이 아니라는 거다. 친일에 독재정권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너무 정신없어서 반칙이지만, 어쨌든 IMF로 대박 한 건 터뜨렸잖아? 우리 아빠가 그것 때문에 짤렸거든!


b. 그런데 왜 이모양이야?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여기저기서 참 많이도 얻어 맞았다. 보수진영엔 그냥 눈엣가시이고 파병연장에 FTA따위나 체결하고 있으니, 이건 진보측 인사들에게도 믿는 도끼에 발등찍힌 격이다. 어렵게 어렵게 대통령 만들어서 촛불시위까지 해줬는데 대연정이니 뭐니 하고 있으니 사실 그래도 싸다. 문제는 정부의 정책기조가 아무런 정체성이 없다는데에 있다. 그리고 이건 단순히 이번 정권만의 문제라기 보다는 우리나라 정치권이 가진 가장 본질적인 고민에 가까울 것이다. 단지 독재에 저항한 경력이 있다는 이유가 진보와 보수를 가른다면 이건 어마어마한 폭력이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개념들은 어디까지나 역사적이고 상대적이기에 "~한 것"으로서 정의내려지는 순간 폐기처분 될 수 밖에 없다.
  혹시 <평등>의 가장 올바른 대치점에 있는 단어가 뭐라고 생각하시는가. 불평등? 억압? 권위? 더욱 적절한 정답은 <자유>다. 난 대한민국 정치권의 좌파, 우파분들이 이제는 그만 민주화운동 시대의 동상이몽에서 깨어나셨으면 좋겠다. 이러니 <신자유주의를 지향하는 큰 집행부의 국가>같은 이상한 꼴이 나오지!
  어디서든 정치 얘기라면 원색적인 욕설 외엔 나올게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100보 물러나서 한번쯤은 칭찬해 주자. 불과 몇 십 년 만에 일구어낸 성과라기엔 너무 많은 것들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공은 공, 실은 실, 그렇게 보면 박통도 참 대단한 사람이고, 어느새 세계 수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이 나라도 무작정 미워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선진 정치의 문턱에서 발생되는 과도기적 잡음은 어느정도의 시간이 자연스레 해결해 줄 문제일 수 있다. 다만 유권자로서 우리들에게도 마땅히 이 혼란의 기간을 단축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 아닐까.


c. 정치가 뭐길래?

  근대 이전의 많은 국가들에서 정치와 통치는 명확히 구별되지 않았다. 정치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군주가 통치의 방편으로서 발휘하는 세련된 기술이자 올바른 통치를 일컫는, 말 그대로의 正治로 해석되어 왔다. 서구적 의미의 시민혁명 이후 둘의 관계는 조금 미묘하다. 사실상 군주는 사라졌지만 통치권자로서 군주의 초월적 존재감은 정부나 국가로 이전된다. 어떻게 본다면 본질적 통치자는 구조일 수 있지 않을까. 재미있는 사실은 현대의 명망있는 정치가들이 모두 통치와 정치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해왔다는 점이다. 아마 스스로 통치받기를 원하는 원하는 시민은 거의 없겠지만, 그럼에도 이들이 정치가의 위험한 카리스마나 고집에 더 많은 선망의 시선을 보내왔음은 무척 흥미롭다. 노무현 정권이 이룬 성과라면 통치의 메커니즘만을 우려먹던 대한민국에서 철저히 정치 했다는 것이다. 참여정부는 마지막까지 누구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둘의 비율을 적절히 맞추는데 성공했다. 추측컨대 인간의 역사에서 통치도 정치도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은 결국 서로에게 지킬과 하이드같은 존재 아니겠나.
  오늘날의 가장 일반적인 정치제는 대의 민주주의 제도다.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그 기원을 찾지만 오랜 역사적 단련을 걸쳐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대의'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실적으로 모든 시민들이 정치적 의사를 개진하는 것이 불가능할 뿐더러 효율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술적인 발전이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면 어떨까? 실제로 웹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누리꾼들의 정치활동은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을 조심스레 예측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직접적인 정치로의 참여가 혁신적인 청사진 속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정책의 전문성이 보장되지 않는 직접 참여가 사회적으로 더 이로울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내리기는 분명 쉽지 않다.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을 것이다. 직접 민주주의 하에서 이합집산에 따라 성공적으로 분권적인 덩어리들이 나뉘어 진다면 진정한 지방자치와 풀뿌리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이것이 자연스레 소국 소정치의 이상적인 정치 형태로 발전할 수 있지 않겠는가.


d. 마치며.

  정치는 이권 행위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권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 존재이지만, 정치는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세련되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덧붙여 보다 넓은 시야를 가졌을 때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이익의 권리는 획기적으로 증가한다. 쉽게 말하자면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나를 이루는 많은 것들의 무게를 함께 고려할 수 있는 안목이다. 자연, 국가라는 공동체, 평화, 하나의 생명으로서 다른 생명을 대하는 대등한 경외심, 과연 이러한 덕목들 없이 우리가 온전한 스스로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의 꽃은 누가 뭐래도 선거다. 때문에 민주 사회에서 선거는 하나의 성대한 축제여야만 한다. 축제는 소통과 배려와 이해를 전제로 하기에, 가장 큰 선거인 대선 역시 마땅히 소외되고 잊혀졌던 나 주위의 것들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 삶, 철학과 사회, 노동, 되짚어야 할 것들은 무궁무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