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대화. 두 번째. (정리 : 윤율리)

참가 : 구재호, 이수진, 송지은, 배성림, 조한비, 석대범, 윤준혁, 이지은, 이창엽.


  A : 소통 방식에 대해 쭉 얘기 했었다. 알렌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와 메가쑈킹의 만화 두 편을 준비 했다. 모두 직접적인 언어를 순간순간의 느낌과 뉘앙스로 대체한 작품들이다. 이런 식의 간접적인 소통 방식에서 강한 매력을 느낀다.

  B : 소통에 대해 떠오른 느낌들을 음악으로 표현해 보려 했지만 개인적인 사정들로 인해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

  C : 사진을 찍으며 피사체와 소통하기 위해 애쓴다. 그것이 작가의 역할 중 하나이고 만약 대상이 사물일 경우 필요에 따라 나름의 공부를 하게 된다.
  D : 혼자 할 수 있는 그림이 있고 그렇지 않은 그림이 있다. 간결한 터치 하나하나에도 이유가 있어야 한다. 내가 미술가로서 그림과 통하는 방식이다.

  B : 간접적인 소통의 매력을 종종 섹스에서 느낀다. 오르가즘을 위해 서로를 성감대로 자연스레 리드해가는 분위기가 직접적인 요구에 비해 즐거웠다.
  A : 난 저널이나 다큐 쪽의 사진이 불편한데 비슷한 경우일 수 있겠다. 원색적으로 여과없이 쏟아지는 이미지는 간혹 폭력적이다. 그에 비해 간접적인 표현은 훨씬 부드럽다고 해야할까...
  D : 하지만 직접적임의 미학도 있지 않나.
  E : 직접적인 표현들은 일정한 수준을 넘지 못했을때 대부분 굉장히 유치하다. 이런 뉘앙스로 말한 것 같다. 고도의 구상이 깔린다면 물론 미학적이겠지.
  F : 저널이나 다큐에서 쓰이는 사진들은 애초에 다른 목적을 가진 것이므로 섣부른 환원은 타당하지 않다. 

  B : 직접적인건 이성의 영역이고 간접적인건 감성의 영역이라는 식으로 이야기 되고 있다. 꼭 그럴까.
  E :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목적성에 따라 직접/간접이 구별되어야 옳다.
  A : 분명한 목적성이 있음에도 간접적으로 호소하는 예술 작품들이 존재하는데.
  B : 결국 얼마나 청자에게 여지를 남겨주느냐 인가. 금연을 비판하는 경고문구 대신 폐에 생긴 종양의 사진을 보여주는 방식처럼.
  A : 적어도 후자에서는 암덩어리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걸 보여주기 위해 찍은거야, 라고 주장하는게 불가능하진 않겠군.
  D : 그러나 이미지가 언어에 비해 오히려 훨씬 타이트하고 폭력적일 수 있다. 단적인 예로 금연 공익광고에 등장하는 문구가 더 두렵나, 사진이 더 두렵나.
  A : 전 시간의 논의들은 (이미지적인) 예술적 소통이 간접적인 것이라는 전제 하에 이루어 졌었다. 그런데 더이상 그런 전제는 무의미한 듯 싶다. 카테고리보다는 성분이 가진 선정성(찔러오는 정도)의 문제같다.

  F : 직접 소통의 대명사로 쭉 언어를 예로 들었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의미 전달에 목적이 있는데 애초에 이런 비교가 타당한가.
  B : 언어의 뿌리는 대부분 상형에서 왔다. 모호하긴 하다.
  E : 의미 전달과 소통을 억지로 연결하려 애쓸 필요 없다. 진짜 소통은 관계성 속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언어는 다만 지칭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의 추상화 정도다.

  A : 신영복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소통은 서로가 서로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보는 것이다. 클로이가 마시멜로우를 이해한 것은 깊은 공감과 이해 없이는 불가능했다. 포스트 모던적 주체와 일치하는 맥락이다.
  D : 대학에서 마음이 맞는 친구들끼리 메론맛이라는 표현을 쓴다. 음식의 맛이 기묘하다는 뜻이다. 집에서 이런 식의 소통은 어렵다.

  E : 내게 있어서는 그 의미가 보다 무거운 것이 소통이다. 어떤 깨달음 같은 것...
  F : 어쨌든 감정이 진실로 움직일때 가능할 테니까.
  B : 내가 절에서 삼천배를 드릴때 느꼈던 합일같은 건가.

  G : 잘못된 소통의 예로 정형화 된 시의 해석같은 것들이 생각난다. 경험상 온라인 동호회에서의 채팅은 분명 같은 곳(목적, 흥미)을 지향함에도 큰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놓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B : 가상 공간에서의 소통?
  C : 모두에게 지나치게 오픈되어 있지만 소통 방식은 하나라는게 문제 아닐까.
  A : 현실 삶 속에서 인격은 변증적으로 형성되는데 반해 온라인에서는 이럴 여지나 틈이 없다. 키보드 워리어들이 가진 공통점이다.

  B : 어쩌다보니 중구난방이다. 휴식 후 정리하자.
  H : 영화 <녹색 광선>을 같이 봤으면 좋았을 법 하다. 완전히 소통할 수 없는 개인들의 상실감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개인적 측면(1:1의 소통)에서 발생하는 이런 문제들에 집중해보고 싶다.


(휴식)


  A : 같은 곳을 볼 때 소통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같은 곳이 단지 흥미나 취향의 도달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적으로 모든 은어들은 완전한 소통인가. 이것은 좀 더 진중한 시대적 지향이어야 한다.
  E : 공공의 적같은 개념처럼 들린다. 적이 사라지면 소통도 순식간에 무너지고 만다.
  A : 여담이지만 어렸을적 분쟁 지역에서 일어나는 전쟁들을 보면서 외계인이 나타나면 지구가 평화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공공의 적이라는 표현에 일차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내가 말하는 이 적이란 훨씬 센 놈이다. 말하자면 모든 현상들의 기저에서 철학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인데, 이게 그리 쉽게 사라질 수 있나. 2007년의 현재에 있어서는 해석과 관계맺음이라 본다. 말과 글로 소통하기 위해 내가 가장 크게 고민하는 부분이다.

  E : 이해의 등위에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B : 인간을 위한 USB가 개발되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때마다 일일이 나를 설명하는 대신에, 내 생각과 기억이 담긴 칩을 머리에 꽂아주는 거지.
  H : 기발하다. <녹색 광선>의 마지막 씬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주인공이 남자를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며 해변에서 함께 일몰을 본다. 일몰의 빛깔에서 (굉장히 자의적으로) 언뜻 초록색을 보는데 그것이 영화 제목이 뜻하는 바다.
  A : 어쩌면 인간이란 존재가 가진 숙명인가...

  B : 많은 얘기들을 했지만 정작 인간은 왜 소통하려 하는지 묻지 못했다.
  C : 외로운 존재로서 자신 바깥의 존재로부터 이해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
  H : 오히려 자기 스스로를 이해시키려는 노력일 수도 있다.
  A : 두가지가 어쩌면 같은 이야기 일지도.
  F : 뭔가를 이야기 할 때 내가 이미 답을 알고있는 경우가 많다. 비슷한 느낌이다.

  B : 소통에 대해 말하다 보니 인간은 이기적 존재일 수 밖에 없는지 의문이 든다. 기득권이 기득권을 답습하는 순환은 인간이 필연적으로 가진 경험과 소통의 한계일까.
  E : 이권의 속성이라면 모를까 경험의 문제는 아니다. 궁극적으로 완전한 소통이 가능한 사회는 불가능 할 것 같다.
  A : 정보화 시대로 진입하면서 여러가지 소통의 창구는 늘어났는데.
  E : 소통이 발생할 수 있는 시작점이 늘어났을 뿐이다. 오히려 시작점이 다양하다는 말은 그 다양한 문법을 모두 이해할 만한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건 길이 더 좁아지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F : 소통의 문법이라 함은 가령 발레 동작 하나하나에 각각의 뜻이 있어서 그걸 배운 사람만이 발레로 소통할 수 있는 경우 같은건가?
  H : 하지만 그걸 모르는 평범한 관객들도 발레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을 자연스레 느낀다. 그리고 그게 더 본질적인 소통에 가깝다.
  C : 막연히 추상적인 어떤 감동을 느끼는 것과 발레 동작이 지칭하는 정확한 개연성을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A : 확실히 서양화 읽는 법을 배운 뒤로 미술관에 가면 조금 더 디테일한 맥락이 잡히긴 한다. 수의라던가, 새, 과일 등이 모두 있어야 할 제자리에 배치되어 있다. 그네들에게 사물들이 가지는 독특한 의미가 있으니까. 무시할 수는 없는 요소지만 문법이 주가 되는 것도 목적전도이다.

  E : 내 본업은 아마 건축이 될 것이고, 이를 통해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건축물은 비어있어야 한다. 이미 완결되어진 건축은 단지 하나의 작품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진정한 의미에서 공간의 완성은 인간이 자체의 삶으로서 채워나가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병산서원을 스케치한 그림을 준비해 봤다. 빈 곳을 비어있게 놔두는 한국의 전통 건축에서 나는 그러한 가능성을 본다. 여백을 통해 건축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유연히 소통하는 것이다.
  D : 흥미로운 얘기다. 건축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