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감시와 처벌 <1> 처벌 : 신민주

1장. 일반화한 처벌 - 범죄의 양상변화, 범죄자에 대한 정의의 변화, 그리고 ‘완화’된 것으로 보이는 처벌의 양상 변화.

    19세기, 이제 더 이상 잔인하고 가시적이며, 직접적인 형태의 신체형은 쓸모가 없어졌다. 이제 처벌은 좀 더 간접적이고 인간적인 동시에 보다 더 효과적으로 인간성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변화한다.

“19세기에 들어와서, 범죄자 속에서 발견되는 이 ‘인간’이 바로 형벌 결정의 표적이 되고, 교정하고 변화시킨다고 주장할 수 있는 대상이 되고, 일련의 기묘한-‘행형’과 ‘범죄론’이라는-학문과 현실의 영역이 되는 시기가 도래한다. 그러나 이러한 계몽시대에서 인간이 신체형의 야만성과 대립된다는 것은 하나의 적극적인 지식의 주체...로서가 전혀 아니고 처벌권의 정당성을 제한하는 경계로서, 즉 법적인 한계로서 이다.”

    19세기 이후 처벌과 형벌의 형태가 ‘야만적인’ 형태에서 비교적 ‘인간적인’ 형태로 변화한 까닭은 인간의 존엄성이나 인권 따위와는 관련이 없다. 오히려 인간을 하나의 교정할 수 있는 지적인 대상으로서 바라봄으로서, 범죄자들을 통제하는 방식이 처벌자체나 그 본보기로서의 효과 이상의 것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형벌의 인간성, 그것은 전자(군주의 무제한적 권력)와 후자(항상 발생하기 마련인 민중의 위법행위)에 모두 제한을 두어야 한다는 처벌제도에 부여된 규칙이나 다름없다. 사람들이 형벌에서 존중해 주려는 ‘인간’의 의미는 이러한 이중적 제한에 부과하는 법률적이고 도덕적인 형식인 것이다.” 

    공개적인 처벌, 일종의 폭력적인 협박과 과시의 방식은 그 부작용인 반작용으로서의 폭력이 생길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제 그 부담을 최소화시키고, 통제의 효과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니 굳이 거칠고 투박한 방식의 처벌이 더 이상 필요 없어 진 것이다. 푸코는 이 ‘형벌의 완화’가 탄생된 과정을 그 초기 역사에서 찾았다. 17,8세기의 범죄 경향은(물론 배경은 앞에서 한정지었듯이 프랑스과 일부 유럽국가들.)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을 비롯한 과격한 범죄에 비해 소유권에 관련한 절도, 사기 등의 범죄가 대폭적으로 늘어난 것으로 보였다. 즉 이로 인해 범죄자에 대한 정의와 계산법이 달라질 필요성이 생겼다는 것이다. 

“법제의 형벌 완화보다 선행하여 범죄의 내용이 완화된 것이다.”

    이 부분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인권이나 역사의 진보와 같은 낭만적인 과정과는 거리가 있다. 처벌의 변화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고려되었고, 기술적으로 변화한 것이었다. 

“개혁이 탄생되는 것을 볼 수 있는 전체적 상황은 새로운 감수성의 상황이 아니라 위법행위에 관한 달라진 정치적 상황이다.”

“이런 경향은 위법행위의 경제가 자본주의 사회의 발달과 더불어 재구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정리하자면,

1. 가시적이고 신체적이며 야만적인 형태의 처벌이 비교적 온화하고 덜 가시적이며 ‘인간적’인 형태로 바뀐 이유는 처벌대상에 대한 정의가 바뀌고, 범죄의 양상이 변화했기 때문이며, 이 모든 것에는 경제적 환경의 변화가 깔려있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의 진보등 낭만적인 것들과는 상관이 없다.

2. 범죄자들에 대한 정의가 달라지고, 통제 대상이 확장되고, 통제구조 안의 구성원들의 자리이동이 생기면서 “처벌권은 군주에 의한 보복에서 사회를 수호한다는 의미로 방향이 전환”되었다. 즉 이제는 군주-> 농노, 백성의 일방적이고 가시적인 억압적 구조에서 [법(시민)]의 포괄적이고 모호한 방향성을 가진 구조로 변화한 것이다. 그러나 ‘공동선’이나 ‘사회정의’등의 한층 더 고결하고 정의로운 목표를 둠으로서 처벌권은 한층 더 강력한 정당성을 부여받게 되었다. 이제 범죄자 개인의 신체를 처벌하고 전시하는 것을 넘어, 잠재적 범죄자인 시민들의 의식에 합법적인 cctv를 설치한 셈.

3. “처벌은 효과를 노리는 기술이 된다.” 이제 처벌은 결과에 대한 응답과 통제력의 과시가 아니라 잠재적 행위의 예방, 의식 속에 촘촘히 자리 잡는 것에 더욱 초점을 맞추게 된다. 자연스레 범죄자체의 성격이나 정도에 따른 형벌보다는 범죄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형식의 형벌이 생겨난다.

분량의 최소화 법칙 (범죄에서 발생하는 이익보다 형벌을 받음으로서 생기게되는 손해가 클거라는 가늠을 할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형벌은 범죄에서 발생하는 이익에 밀접하게 관련이 있어야 한다.) / 관념성 충족의 법칙 (신체에서 오는 감각의 괴로움이 아니라, ‘괴로움’의 생각 때문에 겪는‘괴로움’을 이용한다. 이제 신체는 괴로움이라는 관념을 담는 표상으로서만 존재한다.) / 측면적 효과의 법칙 (형벌은 범법행위를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가장 강렬한 효과를 거두어야 한다.) / 완벽한 확실성의 법칙 (범죄행위와 형벌의 연결고리를 정당한 연관성이 있다고 여겨져야 한다.) / 보편적인 진실의 법칙 (법과 이성에 대한 완연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신뢰성을 잃은 입증절차들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추리하고 판단할 복잡한 체계를 확립한다. 일방적인 ‘보복’이 아닌 공적인 ‘심판’으로서 들어앉은 처벌은 이제 보편적이고 과학적인 성격을 띤다.) / 최적의 특성화 법칙 (범죄를 정의하고 형벌을 규정하는, 완전하고 명백한 기호체계가 필요하다.)

    위에서 나열한 법칙들에 따라 죄와 형벌은 그에따른 적절한 표상으로 엮인다. 이 과정에서 분명한 것은, 형벌에 있어 신체는 직접적인 고통을 가하는 대상이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과 연결되는 기호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어리석은 전제군주는 노예들을 쇠사슬로 구속할 지 모르지만, 참된 정치가는 그것보다는 훨씬 더 강하게 관념의 사슬로 노예들을 구속한다…… 습관적으로 굳어진 관념의 결합은 더욱 더 강하게 조여드는 사슬과 같다. 가장 튼튼한 제국이 흔들리지 않는 기반은 인간의 부드러운 두뇌신경조직 위에 세워진 것이다.”

    신체에 가해지는 감각적인 고통들로서의 형벌은 관념속에 깃든 두려움과 괴로움으로 대체되었다. 대신, 중요해진 것은 죄와 벌의 흔들림 없고 확실한 연결고리였다. 당위성을 이끌어 낼, 신뢰할만한 인과관계를 만들어내야 했던 것이다. 인간의 정신을 제어가능한 통제의 대상으로 보면서, 처벌은 범죄자의 개별적인 행위 보다는 범죄자의 인간성에 죄를 묻는 형태가 되었다. 

“처벌은 범죄를 방지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해야한다. 따라서, 징벌의 본보기라는 역학속에서 위치이동이 생기게 된다. 즉, 신체형 중심의 처벌제도에서의 본보기는 범죄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이중적 표현방법으로서, 범죄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것을 제압하는 군주의 권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2. 유순해진 형벌 - 2장에서는 1장에서 요구된 정신적이고 ‘인간적’인 처벌형태로서의 감옥이 어떻게 가장 보편적이고 효과적인 처벌수단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분석한다. 그리고 형벌로서의 감금이 어떤 기술론적 근거들에 의해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보여준다. 

    형벌은 갈수록 치밀하고 조직적이어 진다. 1장에서 형벌의 변화과정과 그 양상, 배경을 조명했다면 2장에서는 변화된 형벌의 성질과 효과에 대해 분석한다. 인간의 의식을 대상화하고, 범죄자들을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규정하면서 형벌의 목적은교정이 되었다. 여기서 중요해진 것은 시간과 고통, 정념의 관계이다. 이제 처형도 잔인하고 자극적인 쇼에서 장엄하고 비극적이며 고상한 의식으로 변화한다. 범과 사회에 의해 심판을 받는 비정상적인 개인. 이로서 처형은 개인과 개인(집행인과 처형자 혹은 군주와 범죄자)의 대립구도를 정의와 불손한 개인의 구도로 몰아간다. 비난의 화살(부작용. 폭력의 반작용)이 박힐 대상을 소멸시켜버린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처형은 국민들의 감수성과 정서를 자극하는 비극적인 상황을 연출함으로서 그 기억과 그 속에 깃든 기호로서의 금기를 마음속에 새기게 하는 효과를 얻는다.  인간에 대한 보다 세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형벌은 표면상으로는 더 은근하고 온화한 형태로 더 보편적, 일반적으로 인간의 의식에 관여하는 방식이 되었다. 당근과 채찍 모두를 사용할 수 있는 기술적 완성도를 확보하게 된 셈이다. 고통과 증명이 아닌 교정이 목적인 형벌은 유순하고 끈질기다. 

“인간을 개별화시키는 지식의 총체가 조직화되는 셈이며, 그것은 저질러진 범죄(적어도 개별적 상태에서의 )를 참고 사항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개인이 숨기고 있고, 일상적으로 감시되는 행위 속에 나타나는 잠재적인 위험을 참고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감옥은 지식의 도구로서 작용한다.”

    초기의 감금, 감옥은 범죄행위의 여러 가지 성격들에 상응하는 알맞은 방식이 아니었다. 신체형이 유효했을 시기에 감금은 사람들을 벌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본격적인 형벌을 받게 될 신체를 그저 가두어 두는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푸코는 처벌 장치로서 작동했던 네덜란드와 영국, 그리고 미국의 감옥 모형에서 일치되는 것들을 찾아냈다.

“첫째, ‘교정 시설’은 역시 어떤 범죄의 소멸이 아니라, 그 재발 방지를 주요 역할로 삼는다.” 그리고 “징벌은 어떤 종류의 교정기술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감옥을 처벌 장치로 사용함으로 인해서, 즉 교정을 처벌의 과정에 놓음으로 인해서 만들고자 하는 것은,

“사회계약의 기본적 이해 관계 속에 걸려 있는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복종하는 주체이고, 습관이나 규칙, 명령에 복종을 강요당하는 개인이고, 그 개인의 주변에서 부단히 영향력을 가하고 또한 개인으로서는 자기의 내부에서 자동적으로 작용하게 내버려 둘 수 밖에없는 어떤 권위이다.”

3-1. 감시와 처벌 <2> 신체형의 호화로움 : 하상현

1. 진실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신체

    감시와 처벌에서 권력-지식-주체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신체형이라는 형벌부터 시작한다. 신체형의 호화로움이라는 단원 제목이 말해주듯이, 신체형은 현재의 우리가 단순하게 바라보는 잔혹하고 미개한, 계몽되지 못한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형벌은 정교하고 복합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모종의 의도를 철저하게 수행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 의도를 수행하기 위해 1) 평가할 수 있는 특정양의 고통을 만들어야 했고, 2) 고통을 만드는데 정확한 규칙을 따랐고 3) 일종의 의식을 구성해야 했다. 

*신체형의 ‘극단성’에는 권력의 경제학이라는 모든 논리가 담겨 있었다.

    푸코는 계속해서 ‘진실을 생산’한다는 표현을 쓴다. 명백히 부자연스러운 논리로 신체형을 받는 피고인 없이 조사를 하는 것, 또 그것을 자백으로 확증하기 위해 ‘고문’이라는 특이한 방식을 사용하는 것 등이 진실을 ‘생산’한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이다. 고문을 통해서 자백하게 한다는 것은 사실상 모순적인 것이다. 자백이라는 말에는 자발성이 들어가 있으나, 고문은 신체에 고통을 가하면서 그러한 자발성을 수동적으로 나오게 한다. 이는 진실과는 관계없는 힘(고통)의 논리로 인해 승리한쪽이 진실을 ‘생산’하게하는 것이다. 여기서 고문의 특이한(모순적인)방식을 통해서 ‘주체화’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 하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범인을 일방적인 잣대로 조사하고, 고문으로 자백하게 하여 진실을 생산한다. 그 후 공개적인 의식으로써 신체형을 통해, 범죄를 공적인 자리에서 고백하고(다시 한번), 범죄를 재현하거나 그 범죄와 비슷하게 상징적인 처벌을 받거나 하여 범죄와 범인 사이의 연결고리를 강하게 하는 재생산 작업을 한다. 더 나아가 사람들은 신체형 안에서 범인이 고통을 받는 모습을 통해 새로운 의미(진실)를 창출해 낸다―범인의 고통을 통해 그 죄가 덜해진다거나, 신이 범인에게 고통을 허락하였다고 보는 것과 같이. 신체형은 권력이 범인의 신체를 무대로 진실을 생산하고, 또 재생산하는 모습을 호화롭게 보여주는 것이다.

2. 정치적인 과시로써의 신체형

    신체형은 정치적인 행사로 이해되어야 한다. 법을 어겼다는 것은 군주의 힘에 대항했다는 의미에서 군주의 신체를 해치는 행위 이다. 군주(권력)은 신체형으로 잔인한 보복, 의식을 치른다. 이는 균형을 회복하려는 것보다 감히 법을 위반한 신하와 군주의 힘의 불균형을 최대한으로 회복시키는 일이다. 신체형은 물리적인 힘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공포를 이용한 정치였다. 

*신체형이 계속해서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진실을 명시하는 것이면서, 권력을 운용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신체형이 있으므로 문서와 구술과의, 비밀에 부쳐진 것과 공개된 것과의 증거 조사 절차와 자백의 역할과의 그 모든 연결이 확고히 보장된다.

    신체형이 이 두 가지 역할 즉, 진실을 명시하는 것과 군주의 힘을 보이는 것 사이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작용하게 때문에 매우 유용했던 것이다. 여기서 진실이라는 용어는 푸코의 권력-지식개념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지식은 언제나 진실, 타당성으로 취급되고 다수를 움직일 수 있는 권력이 된다. 범죄에 있어서 진실도 이와 같은 역할을 한다. 신체형은 그러한 진실을 확증함과 동시에 군주의 절대적인 힘의 공포를 민중들에게 심어줄 수 있는 것이다. 

3. 민중의 양의적인 성격

    신체형에 있어서 민중들은 양의적인 성격을 띈다. 군주의 백성으로써 파렴치한 범죄자에게 보복하는, 그래서 그 군주의 법과 권력을 신체형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스스로 체화하는 민중으로써가 그 한 모습이다. 반대편의 모습은 막강한 권력을 보여주는 처형의식에서 민중이 공포심을 느끼고, 형벌을 받는 사람과 연대의식을 느끼는 경우이다. 후자의 민중의 효과는 잔인한 형벌이 ‘인간적인’ 형벌로 바뀌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었을 것이다.

3-1. 감시와 처벌 <1> 수형자의 신체 : 김지원

1. 형벌의 변화 ㅡ권력 작용 방식의 변화

*(...)드디어 그는 네 갈래로 찢겨졌다. 이 마지막 작업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왜냐하면, 동원된 말이 그러한 견인 작업헤 익숙해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24).

    다미엥의 화려한 신체형이 보여주듯, 18세기 이전의 형벌은 '고통의 요란스러운 과시'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듯 하다. 만인이 보는 앞에서 팔 다리를 찢고, 내장이 튀어 나오고, 비명을 지르는 범죄자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어떤 형상을 만들어낸다. 그러한 형상은 다름 아닌 왕권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18세기 이전의 형벌은 범죄자 1인에게만 행사하는 권력이 아닌, 이를 보고있는 만인에 대한 직접적인 권력의 행사라고 할 수 있다(그러한 권력의 운영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단두대야말로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실제의 신체에 대한 법의 적용이라기보다 모든 권리 중에서도 특히 생존권의 보유자인 법적 주체에 대한 법의 적용이라고 간주된다. 그것은 법 그 자체의 추상화된 의미를 확보하는 것이었다(38).

    19세기 초, 혁명과 변혁의 시기를 거치며 공중의 구경거리로서의 신체형은 서서히 소멸한다. 고통의 요란스러운 과시를 제거하고, 한층 더 교묘하고 부드러운 방법으로 고통을 전환시킨 것이다. 단두대 등의 고통이 없는 사형이 집행되는데, 이는 고통스러워 하는 인간 모습의 삭제이긴 하지만, 여전히 대중의 시선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변화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왕권의 '톱니바퀴'로서의 형벌이 힘을 잃고, 법의 표상으로서의 형벌로 권력이 이동했음을 말한다. 법의 집행이 권력의 톱니바퀴를 굴러가게 하는 방식이 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들은 정념, 본능, 비정상, 불구, 부적응, 환경 혹은 유전의 영향을 재판하는 것이다. 사람이란 공격적 행위에 대해 재판하지만, 그것을 통해 공격적 성향을 재판하는 것이다(45). 

    19세기 이후, 이러한 법이 가진 권력의 톱니바퀴로서의 형벌은 더욱 복잡한 형식으로 변화한다. 더 이상 신체에 대한 형벌이 아닌, 정신에 대한 형벌로, 나아가서는 정신을 포함하고 있는 신체에 대한 형벌로 변화하는 것이다. 법은 심판을 위한 도구의 역할에서 '인간이 되게 하는'역할로 바뀌었고, 범죄의 진실을 요구하는 것에서 범죄자 내부의 문제를 분석하고, 치료하는 것으로 옮겨왔다. 또한 재판관과 사형 집행인이 동일시 되던 인식이 점차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재판관 이외의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교육자 등이 처벌권을 분할 행사하게 되었다. 형벌의 방식이 권력의 작용 방식을 설명한다면, 19세기 이후 형벌은 어떠한 권력의 표상을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법의 역할이 범죄의 진실 요구에서 범죄자 내부의 문제로 전환되는 지점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권력은 더 미시적인, 각 개인과 그 개인의 관계로 옮겨 온 것이다. 

*범죄 사법이 운용되고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 하는 방식은 이처럼 사법 이외의 지식에 의존해 이루어졌다. 징벌의 완화는 권력의 완화가 아니며, 징벌의 적용 지점이 달라진 것일 뿐이다. 과학적인 담론들은 처벌을 관장하는 권력의 실제와 함께 형성되고 교착되어 있다.

2. 권력의 성질 ㅡ신체의 규율화

    권력은 더이상 어떤 주체를 설정할 수 없게 되었다. 왕으로 대표되던 권력의 상징은 이미 몰락했고, 법도 법 그 자체로서 가지는 권력이 희미해졌다. 재판을 하는 이는 판사가 아닌 모두가 되었고, 그 의미는 법이라는 추상적(다가오지 않는) 개념에 앞서 각 개인에게 내면화 되어지는 현실적인 규율이 우선시 되었다는 것이다. 

*권력의 미시 물리학을 분석하는 작업은 그 전제로서 우리들이ㅡ권력에 대해서는ㅡ폭력과 관념의 대립, 소유권에 대한 비유적 표현, 계약이나 정복의 모형을 버려야 하고, 한편 지식에 대해서는 '이해관계가 있는' 것과 '이해관계가 없는' 것과의 대립, 인식의 모형과 주체의 우월성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59)

    계속해서, 처벌 방식의 변화는 권력의 성질을 설명한다. 권력은 주체자가 행사하는 폭력도, 소유도, 계약이나 정복의 모형도 아니다. 이는 단지 작동방식일 뿐, 그 방식이 권력의 성질을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권력 그자체는 순수한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주체 또한 힘을 가진 사람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며, 힘을 행사하는 사람과, 그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람을 포함한다. 권력은 말하자면 관계 그 자체인 것이다. 관계가 작동방식을 만들며, 만들어진 작동방식에 의해 권력은 작동하고, 작동하는 권력에 의해 사람들은 살아가며, 변화하고, 변화는 또 새로운 작동방식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체는 우리가 너무나 당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는 데카르트적 주체가 아닌, '주체화'라는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바로 근대 이후의 스스로 주체화 하는 '신체'이다. 기존의 서구 철학의 기본적인, 전제적 사유 방식인 데카르트적 주체는 이성, 정신의 완성을 중시하지만 푸코는 이를 뒤집는다. 

*그것은(정신은) 권력이 신체에 대해 행사하는 지배력 안의 한 부품인 것이다. 영혼은 정치적 해부술의 성과이자 도구이며, 또한 신체의 감옥이다(62)

*소유된다기 보다 행사되고, 획득하거나 보존하는 특권이 아닌 총체적 효과로서의 권력. 이 권력은 특정 지식을 창출하고, 이 지식과 긴밀히 연관하여 인간의 신체를 복종하는 신체로 만든다. 신체는 생산하는 신체인 동시에 복종하는 신체일 경우에만 유익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권력이 가장 직접적으로 작동하는 수형자의 몸, 즉 처벌의 대상이 시네에서 정신으로 옮겨온 것에 의거할 때, 정신 또한 위와 같은 맥락으로 권력 아래 놓여있는 것이다.

    정신이 신체를 지배하는 방식이 아닌, 신체의 규율이 정신을 규제하고 있으며, 이것이 다시 신체의 자발적 규율로 나타나는 방식인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인간은 사회적 규율을 내면화하고, 스스로를 정상의 범위에 포함시키려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주체'는 없고, '주체화'하는 신체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체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실제하며, 그 말은 즉 권력 속에서만 실제한다는 뜻이다.

2-2. 공산당선언 <1>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문헌 : 이정

1. 반동적 사회주의

-봉건적 귀족과, 노동계급 그리고 부르주아지.

[현대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완전한 무능력 때문에 언제나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그들은 민중을 자기 뒤에 끌어 모으기 위해 프롤레타리아의 동냥자루를 깃발 삼아 손에 들고 흔들었다.]

-소시민

    이들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에서 유동하며 시민 사회를 보충하는 부분으로서 항상 새로 형성되고있다. 프랑스처럼 농민계급이 인구의 반을 훨씬넘는 나라에서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편에서 부르주아지를 반대하는 작가가 소시민적이고 소농민적인 잣대로 부르주아 정권을 비판하고 노동자 정당편에 가담하는것은 당연한일이었다. 현대의 생산관계에서 나타나는 모순을 예리하게 해부했다. 그것은 기계장치와 분업의 파괴적 효과를 논박의 여지없이 증명했으며, 자본과 토지 소유의 집중, 과잉 생산, 공황, 소시민과 소농민의 필연적 몰락, 프롤레타리아트의 빈곤, 생산의 무정부 상태, 부 분배의 극심한 불균형, 국가들간의 산업적 섬멸전, 낡은 관습, 낡은 가족 관계, 낡은 국적의 해체 등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증명했다. 반동적인동시에 유토피아적. 다만 노선은 발전과정에서 비겁한 비탄의 길로 빠졌다.

-독일 사회주의 

    프랑스의 사회주의 문헌과 공산주의 문헌이 들어올때 독일의 부르주아지는 봉건적 절대주의와의 투쟁을 막 시작할 시기였다. 프랑스의 문헌은 의례적으로 거세되었다.

[거세된 문헌은 더 이상 한 계급이 다른 계급과 벌이는 투쟁을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독일인은 프랑스의 일면성을 극복했으며 진정한 욕구들 대신에 진리의 욕구를 프롤레타리아의 이해관계 대신에 인간 존재, 인간 일반의 이해관계를 대변했다고 의식하고 있었다.]

    자신의 서투른 학교 숙제를 너무나 진지하고 장엄하게 받아들이고, 시장의 호객 상인처럼 커다랗게 부풀려 떠벌였던 독일 사회주의는 그동안 점차 현학적인 순수성을 상실해갔다. 독일의 사회주의는 독일의 절대주의 정부에게 위협적으로 부상하는 부르주아지에 맞설 수 있는 바람직한 허수아비 역할을 했다.

[봉건적 사회주의자, 쁘띠 부르주아 사회주의자들, 독일 사회주의자들은 부르주아지가 의미하는 역사 발전과정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로 그저 모두들 부르주아지와 현대 산업의 발흥에 대해 투쟁할 뿐이다.]

2. 보수적 또는 부르주아적 사회주의

[사회주의적 부르주아들은 현대 사회는 유지한 채 여기에서 발생하는 투쟁과 위험만을 없애려 한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가 없는 부르주아를 갖고 싶은 것이다.]

3. 비판적 유토피아적 사회주의 (부르주아-사회주의의 본질)

[그들은 가장 나은 처지의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생활 처지를 개선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떤 차이도 두지 않고 전체 사회에, 특히 지배 계급에게 끊임없이 호소한다. 따라서 그들은 모든 정치 활동, 특히 모든 혁명 활동을 비난한다. 그들은 평화로운 방법으로 목표를 달성하려 하며 당연히 실패할 자그마한 실험들과 본보기의 힘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복음의 길을 열어주고자 한다.]

    그들은 대로 기존사회의 모든 토대를 공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역사적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하고 있는 현상에 직면해서도 스승의 낡은 견해를 고수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초지일관 계급 투쟁을 다시 무디게 하고 대립을 중재하려 애쓴다. 비판적-유토피아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의미는 역사발전에 반비례한다. 계급 투쟁이 발전하고 형태를 갖추는 정도만큼 계급 투쟁에 대한 이들의 환상적 극복, 환상적 반대는 모든 실천적 가치, 모든 이론적 정당성을 상실한다. 따라서 이 체계의 창시자들이 많은 점에서 혁명적이었다 하더라도 제자들은 항상 반동적인 종파를 이루었다.

[공상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계급투쟁을 극복하려는 환상적 태도는 모든 실천적 의의와 이론적 정당성을 잃어버린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가 역사적으로 발전하는데도 자신들의 사회적 유토피아를 실현하려고 했다.]

4. 여러 반대 정당들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입장

    공산주의자들은 어디에서나 현존하는 사회 정치 제도를 반대하는 모든 혁명 운동을 지지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소유 문제의 발전 형태를 가리지 않고 이 문제를 운동의 근본 문제로 앞세운다. 지배 계급들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벌벌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전체다.

2-1. 공산당선언 <1> 김범석

1.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먼저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개략적인 정의를 보자. “부르주아지는 사회적 생산 수단의 소유자이며 임금 노동을 착취하는 근대 자본주의자 계급으로 이해된다.” 반면 “프롤레타리아트는 근대 임금 노동자 계급을 말하는데, 이들에게는 자신의 생산 수단이 없기 때문에, 살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일에 의존한다.” 이는 근대 이후 자본 사회의 대립되는 두 계급이다. “이제까지 사회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고 칼 마르크스는 말한다. 이에 조금 덧붙이자면, 마르크스는 사회 구조를 크게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로 설명한다. 하부구조란 물질적 토대, 생산관계, 경제적 구조를 말하고, 상부구조란 하부구조를 통해 생성되는 법, 정치, 예술, 문화, 정신, 삶의 양식 등을 말한다. 가령, 봉건사회와 자본주의 사회를 예로 들어보자. 봉건사회에선 농노와 평민계급 등과 그 위에 귀족, 영주, 군주, 등이 존재했다. 이러한 사회에서의 하부구조로서, 생산과정을 보면, 항상 귀족 및 군주계급이 농노 및 평민계급에 대한 착취를 통해 삶을 영위하고, 사회를 유지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뒤엎으며 부르주아지가 봉건 시대의 시민계급으로서 혁명을 일으켰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르주아지 계급이 자본과 토지를 이용하여 임금 노동자계급인 프롤레타리아의 임금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착취를 행하는 하부구조를 갖는다. 이러한 계급간의 대립을 통해 각기 사회의 고유한 생산방식이 정해졌고, 착취하는 시스템은 유지되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모든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규정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르주아지는 봉건시대의 평범한 도시 시민, 상인계급으로부터, 군주에 대한 혁명을 일으킴으로써 본인들의 지위를 격상시켰다. 그와 동시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경제적 부를 이용하기 시작했고, 자본과 토지를 무기로 하여금, 또다시 임금 노동자를 착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 봉건사회에 존재하던 가내 수공업, 장인을 통한 길드 및 조합, 공장제 수공업 등은 낡은 생산시스템으로 전락하고,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이 기득권을 잡음과 동시에 증기, 기관을 이용한 공장의 기계와 노동자를 생산수단으로 삼기 시작했다. 

    이런 자본 시스템은 거대해지는 경향을 갖는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경쟁과 착취가 필연적으로 동반한다는 것이다. 즉, 소 자본가는 기계와 토지를 이용해 임금 노동자를 착취하고, 그렇게 축적된 소 자본가의 자본은 또다시 대 자본가의 축적된 자본에 의해 경쟁에서 도태되어 다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렇게 끊임없는 순환 속에 결국 살아남는 것은 몇 개의 대 자본이며, 극명한 두 계급 간 대립으로 사회는 치닫게 된다. 이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세계적인 수준으로, 타 국가에게 거대한 자본의 위협이 가해져서 문호를 개방하게끔 하고, 농촌은 도시에, 소국가는 대국가에, 동양은 서양에 종속되는 흐름을 보인다. 결국 모든 것이 ‘착취’의 흐름 하에 흘러가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 프롤레타리아트는 형성된다. 부르주아지는 임금 노동자들이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만큼의 최소한의 임금을 제공한다. 따라서 부르주아지의 부가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임금 노동자의 삶은 항상 최저 수준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 부분에선 여타의 언급이 있진 않았으나, 노동의 본질은 그 가치를 상실하는데,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을 통해 자본을 생산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생산된 결과물들은 임금노동자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곳으로 돌아가며, 정작 자신이 생산을 했음에도, 생산물과 어떠한 직접적인 관계도 맺지 못하는 것이다. 포드주의가 그 대표적인 사례로, 임금 노동자는 기계식 생산라인에 갇혀 각기 맡은 영역에서 자동차 문을 붙이거나, 바퀴를 장착하는 일을 분업하여 도맡는다. 그러나 자동차는 노동자가 아닌 알 수 없는 소비자에게 돌아가고, 소비자 역시 노동자가 누군지 알 수 없다. 즉, 노동의 가치는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그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다. 이렇게, 노동의 가치에서, 또한 임금의 문제에서, 착취 등의 이유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삶은 유린되어가며, 그렇게 계급투쟁을 감행하게 되는 것이다. 

2.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

    공산주의자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공동 이해관계를 강조하고 관철하는 한편, … 항상 전체 운동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즉, 프롤레타리아의 초국가적 집합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사적 소유를 폐지하라고 권한다. 부르주아지는 소유와 자유를 결부시켜서, 소유의 철폐는 자유를 내어주며 과거로 회기 하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의 소유는 부르주아지의 것이며, 프롤레타리아의 것이 아니었고, 자유 또한 차등적 소유에 의해 제한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적 소유화 된 자본을 사회의 소유로 돌림으로써, 자본주의의 계급적 성격이 상실되고, 평등한 자유가 가능하다고 한다. 임금 노동에 있어서,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다만 이런 취득의 비참한 성격을 없애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취득 방식 속에서 노동자들은 자본을 증식시키기 위해 살 뿐이며, 지배 계급의 이해관계가 요구하는 정도로만 살아간다.” “공산주의는 어떤 사람에게서도 사회적 생산물을 취득할 권력을 빼앗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이 취득을 통해 타인의 노동을 자신에게 예속시키려는 권력을 빼앗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걸쳐, 결국 공산주의가 원하는 것은 계급 대립과 착취의 철폐이다. 고대, 중세, 봉건,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 모두가 계급 대립을 전제로 하는 착취의 생산구조, 하부구조 속에 존재해왔다. 그리고 공산주의는 사적 소유를 비롯한 계급 대립 요소들을 폐지하고, 생산 수단을 모두가 평등하게 공유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마르크스의 사상을 현대 사회에 고스란히 적용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 당시엔 봉건사회가 막을 내리며, 도시 시민계급이 부르주아지로 지위가 상승됨에 따라 정치적인 과도기였다. 또한 경제적으로 기계식 산업 혁명이 도입됨에 따라 경제적으로도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간의 이분법적인 계급 대립이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 사회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다양한 계층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간다. 동시에 제도적인 정비도 과거 혁명기에 비해 어느 정도 보장되어있다. 그래서 우리가 경계해야할 것은 ‘어느 정도’라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 정도’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거나, ‘어느 정도’ 괜찮은 계층에 속하면, 우리는 바로 함구한다. 그리고 되려 자신들의 삶이 힘들어서 투쟁을 하는 사람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보낸다. 분명히 자본도, 토지도, 전문적인 자격도 보장되지 않은 사람들이 많건만, 어느 누구도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처럼 움직이고 권익을 보장받으려 하지 않는다. 이율배반적인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